오늘은 대구에 눈이 내렸다. 올 해 첫눈이며 대구에 오늘처럼 순간적으로 눈이 많이 내린 날을 적어도 몇 년은 된 기억이었다.
눈이 오지 않는 대구에 오늘처럼 갑자기 함박눈이 내리면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힘들것이다. 물론 나도 예전 같으면 눈이 내리기 전부터 업무로 인해 걱정을 태산같이 했을 것이다.
오늘은 내리는 함박눈을 보며 걱정보다는 웃음과 미소가 먼저 번졌다.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눈은 늘 조용히 오지만 오늘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대구에 이런 눈이라니. 잠깐 현실감이 흐려질 만큼 낯선 풍경이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미 마음속에서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길은 막히고, 일정은 꼬이고, 전화는 계속 울리고. 눈이 내리기도 전에 하루가 이미 피곤해졌을 것이다. 그게 익숙한 나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걱정이 먼저 오지 않았다. 눈을 보는 순간 웃음이 먼저 나왔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그랬다. 아마도 이제는 눈보다 걱정에 덜 끌려다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반응의 위치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사건이 나를 끌고 갔다면, 요즘은 내가 한 발 늦게 따라간다.
그 한 박자의 차이가 이렇게
큰 표정을 만들어낸다는 걸 오늘 알았다.
함박눈은 잠깐이었고, 금세 해가 떠올라 골목을 제외하고 눈은 거의 녹았다. 대구의 눈은 늘 그렇다.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의 눈은 충분했다.
오전을 책과 함께 보냈고, 가볍게 운동을 마친 뒤 치과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대로변에는 언제 눈이 왔느냐는 듯, 아침에 쌓였던 눈의 흔적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많으면 일주일에 두 번, 적으면 일주일에 한 번 벌써 세 달째 치과를 오가고 있다. 밀려 있던 치료를 한꺼번에 하다 보니 한 번 오면 두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이제는 이곳의 냄새와 소리, 대기 시간의 리듬까지 익숙해졌다. 자주 오다 보니, 평소 경험하지 못하던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보게 된다.
지난달에는 서로를 한 노부부의 이야기에 눈물 지었고, 치료가 잘 끝났다는 말에 안도하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눈물 대신 웃음이 남는 날이었다. 치료를 기다리며 치료 침대에 누워 있는데, 복도 끝에서부터 어린아이의 떼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지 않아도 장면이 그려졌다. 치료가 싫은 아이와, 그 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표정까지.
여차저차 아이는 치료 침대에 누웠고,
울음은 멈추었지만 의사에게 질문이 시작됐다.
“이를 꼭 뽑아야 하나요. 안 뽑으면 안 되나요. 아플까요.” 등등 울먹이며 던지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순간부터 오늘도 나는 내 치료보다 옆 치료실에서 오가는 아이와 의사의 대화에 자꾸 귀가 쫑긋 섰다.
의사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도 많이 흔들리는 걸 보니 아플 텐데, 더 아프기 전에 뽑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 말을 듣자 아이는 곧장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나 지금 하나도 안 아프지. 그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픔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그 방식이 너무 아이 같아서였다.
이미 이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아이의 질문은 사실을 말하는 문장이 아니라,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작은 주문 같았다.
“안 아프지?”라는 말에는 스스로를 달래는 힘이 들어 있었다. 현실을 부정하기보다는, 현실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르는 방식이었다.
아이는 아직, 말이 마음을 도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다. 아픔의 기준을 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시선은 아마 치과라는 낯선 공간에서 아이는 통증보다 먼저 관계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그치?”라는 한 단어에는 내가 약해도 되는 자리, 울먹여도 괜찮은 자리가 아직 남아 있는지를 묻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질문은 보호를 요청하는 말이었고, 신뢰를 건네는 말이었다. 그 장면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것은 귀여워서라기보다는, 이제는 잘 하지 않게 된 질문을 아이가 너무 자연스럽게 하고 있어서였다.
나는 언제부터 아픈 걸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견디는 쪽을 선택해왔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아픔을 정확히 아는 일이 아니라, 아픔을 말하지 않는 쪽으로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 “그치?”라고 묻는 일을, 점점 스스로에게서 던져가면서.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첫눈을 보며 걱정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조금 더 앞섰습니다. 나도 이제 조금은 감성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치과 치료를 받으며 마취의 아픔을 잊게 해주는 아이 덕분에 일기에 미소짓는 이야기를 적을 수 있어 일기를 쓰며 이름 모를 아이에게 감사했습니다.
저녁에 먹을 반찬도 없는데 눈이 와서 장보기도 귀찮고 고민하고 있던 찰나, 어제 주문한 갈비탕이 오늘 도착을 했습니다. 덕분에 추운 겨울 따뜻한 갈비탕으로 세식구가 맛있는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