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설 연휴의 첫날이 시작되었고, 예년 같으면 고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도로 위 정체와 씨름하고 있었을 시간이었지만 올해는 이동 대신 집에 남아 도스토옙스키와 하루를 보내기로 한 선택이 묘하게도 평온하게 느껴졌다.
명절이라는 단어에는 늘 북적임과 소란, 그리고 의무라는 기운이 따라붙는다. 어차피 형제가 없는 나에게 명절은 늘 조용했다.
그러나 오늘은 더 조용했고, 차례상을 준비하는 대신 책상이 놓여 있었으며, 송편 대신 두툼한 <죄와 벌>을 앞에 두고 러시아 청년의 내면과 씨름하는 것으로 명절을 시작했다.
고향이 아닌 집에서 맞는 설은 처음은 아니지만 여전히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듯 나는 라스콜니코프의 복잡한 생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며 이왕 조용한 김에 죄와 양심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다소 과한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창밖에서는 연휴의 공기가 흐르고 있었고, 누군가는 가족을 만나러 이동하고 누군가는 선물을 들고 방문을 열고 있을 텐데 나는 러시아의 음울한 골목을 따라 걷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도 나쁘지 않았다.
명절의 소란 대신 문장의 무게를 선택한 스스로를 살짝 칭찬하기도 했다.
물론 책을 덮고 나면 현실은 여전히 나의 것이고, 설이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 하루만큼은 조용한 거실에서 커피를 곁에 두고 도스토옙스키와 대화를 나누며 보내는 이 시간이 나에게도 나름의 명절 의식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명절이 꼭 이동과 모임으로만 채워져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고, 때로는 나 자신과 마주 앉아 긴 문장을 넘기는 시간 역시 또 다른 형태의 귀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는 고향 대신 책 속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셈이었다.
라스콜니코프가 자신의 선택과 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흔들리는 모습을 읽으며, 명절이라는 시간도 결국 각자가 짊어진 생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거나 다시 확인하는 기간이 아닐까 싶었다.
연휴의 첫날을 이렇게 보낸 것이 옳은 선택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판단하면 될 일이지만, 적어도 오늘은 북적임 대신 사유를 선택했다.
술, 음식, 인사, 웃음 대신 문장을 택했으며, 고향 대신 도스토옙스키를 만난 하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설의 시작이었다고 조용히 정리해본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춘천의 처형이 닭갈비를 보내주었습니다. 건강 잘 챙기라는 메시지도 함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조용하게 연휴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의 여유에 감사합니다.
연휴에 찾아뵙지 못해도 다 이해한다고 말씀해주시는 어머님의 헤아림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