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5일. 숫자로 보면 짧은데 체감으로는 한 달은 족히 다녀온 것 같은 모녀의 싱가포르 여행이 끝났다. 두 사람이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다.
동대구역으로 향하며 집에 사람이 돌아온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대를 부풀어오르게 하는 일인지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출발 전, 두 사람에게 나는 중재자라는 거창한 직함을 스스로에게 부여했었다. 나의 중재 덕분인지, 아니면 나의 기우였는지는 몰라도 다행히 딸은 엄마를 잘 모셔왔고, 엄마는 딸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들었다고 한다.
여행 사진을 보니 정말 그랬다. 다정한 모녀의 모습.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잠시 뿌듯했다. 중재자의 능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내가 말했다. “신랑 빈자리가 많이 느껴졌어.” 순간 나는 마음속에서 뿌듯한 마음과 함께 역시 나는 이 집의 중심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뿌듯함은 여행 뒷풀이 자리에서 차분히 진화되었다. 딸의 잔소리를 막아줄 매니저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딸은 딸 대로 다음부터는 아빠도 같이 가야겠다고 투덜되긴 했지만 그것은 투덜거림보다는 서로의 즐거움을 회상하는 시간처럼 느껴져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두사람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남편이기 이전에 방패였고, 보호막이었고, 완충재였다. 생각해보니 꽤 중요한 역할이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어제 새벽 비행기를 타고온 아내는 피곤하다며 자신의 침대에 일찍 누웠다. 오늘부터 침대의 빈자리는 다시 주인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내 옆을 데워주던 라스콜니코프는 서늘한 서재로 밀려났다. 러시아 청년은 다시 차가운 책상 위에서 죄와 벌을 고민해야 한다.
며칠간은 내가 그의 고뇌를 덮고 잠을 청했는데, 이제는 그가 나를 대신해 고독을 맡아야 할 차례다. 문학적 동거는 잠시 종료다.
침실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공기가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은 방의 온도를 바꾼다.
숨소리 하나, 뒤척임 하나가 묘하게 안심이 된다. 혼자일 때는 자유로웠지만, 둘이 되니 다시 일상의 리듬이 생긴다.
모녀의 첫번째 여행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이야기는 시작이다. 싱가포르의 햇빛과 습도는 사라졌지만, 우리 집의 온도는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라스콜니코프는 서재로, 나는 침대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온 오늘. 이렇게 또 하나의 평범하고도 소중한 장면이 완성되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두사람이 무사히 잘 귀국했습니다. 웃으며 차에 타는 두사람의 모습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길었던 25년이 이제 음력으로도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회복된 몸으로 25년을 보냄에 감사합니다.
꼭 필요했던 작은 선물을 딸이 해주었습니다. 아빠를 생각한 딸의 마음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