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첫 설 명절의 연휴 이자 당분간 긴 휴일의 마지막 날이다. 사람들은 이 날을 두고 “아, 내일 출근이네…”라는 탄식으로 시작한다고 하지만,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책을 펼쳐 들고 있었다.
연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는 사람의 안정적인 루틴이란 이런 것이다. 세상은 쉬고 있지만 나는 늘 하던 대로 활자를 밟고 걸어간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침 공기는 아직 느슨했고, 집안은 고요했다. 아내의 숨결도 아이들 셋도 조용했고 나는 러시아 청년과 동거를 이어가며 조용히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생각보다 일찍 눈을 비비며 나온 아내를 보고 나는 잠시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평소 휴일이라면 아직 꿈나라에서 두 번째 에피소드를 찍고 있을 시간이다.
“왜 벌써 일어났어?”라고 물었더니,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내일부터 출근이잖아. 컨디션 조절해야지.”
연휴 마지막 날에 컨디션 조절이라니. 마치 동계올림픽에 출전중인 국가대표 선수의 경기 전 컨디션 관리 같은 말이다.
나는 연휴에도 계속 집에 있었기 때문에 조절할 컨디션 자체가 없다.
늘 같은 온도로 유지되는 실내 화초 같은 삶이랄까.
아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프로는 다르네.”
아내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당신은 몰라도 된다’라는 묘한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다시 책으로 돌아갔다. 아내가 일찍 일어났다는 사실은 집안의 리듬을 미묘하게 바꾼다. 커피 향이 빨리 퍼지고, 청소기와 물걸레 질을 하는 소리가 거실과 서재를 채운다.
혼자만의 오전 스케줄을 마치고 우리는 아점을 함께 먹었다. 연휴의 마지막 날 아점은 이상하게도 조촐하면서도 상징적이다. 마치 “이제 다시 현실로 갑니다”라는 송별회 같은 느낌이다.
식탁 위에는 어머니가 보내주신 갈비와 김치 그리고 몇가지 반찬들이 차려졌다. 비록 조용한 명절이었지만 나름 오늘의 식탁위에는 명절의 잔향이 조금 남아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아내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옷을 고르고, 머리를 정리하고, 거울 앞에서 마지막 확인을 한다. 그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그리고 한 겨울 반팔티를 꺼내 입는 그때 문득 나는 깨달았다.
아, 내 본업인 매니저.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연휴 동안 나는 독서가였고, 중재자였고, 에어백이었고, 철학자였다. 그러나 아내의 스케줄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자동으로 매니저 모드로 전환된다.
“차는 몇 시에 필요해?”
질문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이미 복직 완료다.
사실 매니저라는 직함은 내가 스스로 붙인 것이지만, 역할은 제법 충실하다. 운전기사, 시간 관리자, 감정 완충제, 그리고 가끔은 잔소리 차단막까지. 나는 이 직업에 월급을 받지 않지만, 묘하게 보람은 있다.
아내는 준비를 마치고 현관에 섰다. 나는 자연스럽게 차 키를 챙겼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반사신경에 가깝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우리는 잠시 눈을 마주쳤다. 연휴의 끝과 일상의 시작이 겹치는 순간이었다.
“연휴를 알차게 보내시는 것 같네요?ㅎㅎ”
내 질문에 아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주 단체전 시합나가려면 예전같으면 매일 갔을 텐데 이번에는 여행가느라 못갔으니 가서 몸은 풀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오전과 같은 혼잣말을 데자뷰처럼 되뇌었다.
“프로는 다르네.”
볼링장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마치 볼링 중독자들 인양 클럽에 소속된 사람들과 가족 또는 친구단위로 온 일반인들이 내는 열정으로 인해 볼링장은 시끌 벅적하고 활기가 넘쳐나는 분위기 였다.
지인들과 땀을 흘리고 컨디션을 끌어올린 뒤 집으로 돌아와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나 조금 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집이 다시 일상 모드로 들어섰다는 신호다.
연휴의 마지막 날은 늘 애매하다. 완전히 쉬지도 못했고, 완전히 일하지도 않은 채,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느낌. 하지만 어쩌면 이 날이 가장 솔직한 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딸은 다시 자신의 생활로, 둘째는 군으로, 막내는 바쁜 일정 속으로, 아내는 직장으로.
그리고 나는?
나는 계속 읽고, 쓰고, 웃고, 매니저를 한다.
연휴가 끝났다고 해서 내 하루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집안의 온도는 조금 달라진다. 모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집도 함께 깨어난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내 명절의 진짜 마무리다.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다시 일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오늘도 감사합니다.^^
볼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웃으며 새해 인사를 했습니다. 그 여유로움에 감사합니다.
지인이 샤인머스켓을 선물해주어 저녁에 후식으로 먹기 전에 그분께 감사전화를 했습니다.
내일 출근 준비를 하는 아내가 직장동료들에게 줄 선물을 챙기며 생각보다 줄 사람들이 많다는 말에 감사를 전해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