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9.죄와 벌을 덮은 날, 현실이 판결을 내렸다.

by 마부자

지난 연휴 동안 나는 아내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준 도스토옙스키와의 동거를 오늘로 마무리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심리를 해부하듯 써 내려간다. 행동보다 먼저 생각을 보여주고, 생각보다 먼저 흔들림을 보여준다. 범죄의 순간은 짧지만, 범죄에 이르기까지의 자기 설득은 길고 집요하다.


나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한 가지 감정에 사로잡혔다. ‘만약에’라는 감정이었다.

만약에 내가 라스콜니코프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 질문을 반복했다. 범죄의 행위 자체를 떠나, 범죄를 감추기 위해 불안 속에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과정. 자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도 스스로를 설득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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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악을 제거하는 행위는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 하는 마음.

자신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비범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착각.

혹시라도 범죄가 들통날까 조마조마해하며 작은 소리에도 움찔하는 심리.


특히 주관적인 판단에 기준한 악을 처단하기 위해 행해지는 ‘한 번의 선’이라는 명목의 범죄에 대한 질문은 오래 남았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 저지른 범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나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저 질문만을 붙들고 있었다. 1권의 서평을 마무리하고 시계를 보니 오후 3시였다.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아 평소와는 다르게 TV를 켰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또 하나의 치명적인 기록이 남는 날이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발령하며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 했던 전직 대통령과 동조자들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지는 날이었다.


가능하면 일기에는 정치 이야기를 적지 않으려 했다. 더구나 독서와 정치가 한 문장 안에서 만나는 것은 더욱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두 세계가 묘하게 겹쳐졌다.


도스토옙스키가 200여 년 전 소설 속에서 말하게 했던 ‘비범한 인간’의 권리. 평범한 도덕과 법을 넘어설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 역사를 바꿀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위험한 확신.


그 사상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 현실의 사건으로 드러났고, 오늘 그 결과에 대한 심판이 내려졌다.


image.png?type=w1 사진자료: 한국경제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 1심 무기징역 선고> | 한국경제

전직 대통령은 내란수괴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가담자 중 가장 핵심적이었던 인물은 30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방송 화면 속 법정의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일부러 날짜를 맞춘 것처럼, 라스콜니코프의 고백과 형벌의 장면이 끝난 바로 그날에 현실의 선고가 내려졌다.


나는 씁쓸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라스콜니코프는 스스로를 비범한 인간이라 여겼다. 사회의 해악을 제거하기 위해 한 번의 범죄는 허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감당해야 했던 것은 법의 처벌만이 아니었다.


양심의 무게였다. 끊임없는 열병과 불안, 자책과 고통이었다. 결국 그는 자수했고, 형벌을 받아들이며 비로소 인간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오늘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 전직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을 설득했던 논리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고 있을까. 아니면 잠시라도 스스로의 행위를 되짚어 보고 있을까. 법정의 표정만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묻게 된다. 저들 역시 라스콜니코프처럼 고뇌하고 있을까. 아니면 끝까지 자기 합리화 속에 머물러 있을까.


소설 속 범죄는 한 개인의 오만이었다. 현실의 범죄는 공동체 전체를 위협한 권력의 오만이었다. 그러나 그 뿌리에는 닮은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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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예외로 두는 생각.

자신은 법 위에 설 수 있다는 착각.

목적이 정당하니 수단은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 위험한 확신.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을 통해 묻는다. 인간은 어디까지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끝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되는가.


오늘의 판결은 법의 언어로 내려졌다. 무기징역이라는 형벌은 국가가 내릴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응답 중 하나다. 그러나 형벌이 곧 속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속죄는 법정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덮고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문학은 상상 속에서 인간을 시험하지만, 현실은 실제의 삶과 공동체를 시험한다.


소설 속에서 나는 ‘만약에 내가 그였다면’이라고 묻는 데서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사건 앞에서는 ‘우리는 어떤 사회였는가’를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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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니코프는 형벌을 통해 비범한 인간이 아닌, 연약하고 죄를 지은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인간다웠다.


오늘의 선고가 우리 사회에도 그런 돌아봄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법 위에 선 인간은 없다는 사실이다.


연휴 동안의 고요한 독서가 이렇게 무거운 현실과 맞닿을 줄은 몰랐다. 아내의 빈자리를 대신해주던 도스토옙스키는 오늘 다시 서재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질문은 쉽게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악은 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는가.

권력은 스스로를 정당화할 권리가 있는가.

그리고 인간은 언제 비로소 자신의 죄를 인정하게 되는가.


나는 오늘, 소설의 마지막 장과 현실의 판결을 한날에 마주하며, 인간과 권력과 죄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웃음은 거의 없었고, 대신 묵직한 침묵이 하루를 채웠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기록한다.

문학이 던진 질문은 200년이 지나도 여전히 현재형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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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일부라도 심판이 내려진 것을 보며 사회적 정의가 실현된 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국회에 있지는 못했지만 그자리에서 무기에 맞서 서계셨던 분들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덮은 책과 현실의 깊은 연관성을 느끼며 왜 독서를 해야하는지 정말 깊이 느껴지며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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