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한 막내는 지난 두 달 동안 거의 프리한 상태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흐릿해진 채, 친구들과 어울려 밤이슬을 맞고 다니더니 결국 지난주 감기에 걸려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빠를 닮지 않아 술 유전자는 강하지 않은 모양이다. 매일 취해 들어오는 일은 없었지만, 결국 몸은 솔직했다. 젊음은 방심을 허락하지만 면역력은 그것을 끝까지 책임져주지 않는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라고 했다. 약을 먹고 증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는데, 그 여파가 결국 나에게로 전해졌다. 어제 저녁부터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하더니 밤이 깊어질수록 기침이 잦아졌다.
새벽에는 목이 아파 침을 삼키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아침이 되었을 때는 몸살 기운까지 더해져 도저히 평소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었다.
감기의 증상 자체보다도, 목에 이상이 느껴질 때면 먼저 긴장이 찾아온다. 생각보다 많이 부어오른 목을 만지며 나는 불가능한 상황까지 상상하고 있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몸은 작은 신호를 보냈을 뿐인데 마음은 이미 최악의 장면을 먼저 펼쳐본다.
결국 인근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자주 가던 병원이라 의사는 나의 투병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차분하게 목을 들여다보며 꼼꼼히 살폈다. 잠시의 침묵이 길게 느껴졌다.
다행히 편도가 살짝 부은 상태였고 독감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이어진 말은 가볍지 않았다.
방사선 치료로 인해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이고, 게다가 편도암이었던 환자에게 기침이 심한 감기나 독감은 치명적일 수도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신신당부였다.
약을 처방받고 병원을 나서는 길, 왠지 모를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저 흔한 감기가 나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예전의 나는 감기쯤은 술 한잔으로 넘기고, 땀을 내며 버티던 사람이었다. 며칠 앓고 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내 몸은 더 이상 무모한 낙관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깟 감기’라는 표현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것이 오늘 나를 가장 서글프게 만들었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도 긴장해야 하는 삶.
내가 설계해야 할 앞으로의 기준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오늘은 내려놓았다. 운동도, 독서도 하지 않았다. 나를 증명하듯 이어오던 루틴도 잠시 멈췄다.
약기운에 잠이 들었지만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답답한 느낌이 남았다. 기분 좋은 꿈은 아니었다. 아마도 낮에 들은 의사의 말이 꿈의 모양을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눈을 뜨고 나니 오후였다.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아침보다는 조금 나아진 듯했다. 나는 천천히 물을 마셨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물의 감각을 의식하며, 이렇게 사소한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생각했다.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건강은 당연한 상태가 아니라 유지해야 하는 조건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조건은 나이가 들수록 더 엄격해진다는 사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운 하루였는지도 모른다. 내 몸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는 법. 무리하지 않는 법. 불안이 올라와도 그것을 과장하지 않고 차분히 확인하는 법.
막내의 감기가 나에게로 옮겨온 것처럼, 가족의 삶은 늘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 연결이 상처가 되지 않도록, 나는 조금 더 조심해야 한다.
오늘은 운동도 하지 않았고, 책도 펼치지 않았다. 대신 몸의 속도를 따라갔다.
아마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성취가 아니라 회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약을 먹고 많이 좋아진 상태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나의 몸에 감사합니다.
아내가 비행기타고 가서 사온 차의 향이 목감기를 덜어주어 목넘김이 편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 했던 내 몸상태를 다시 각인시켜준 오늘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