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2.대구마라톤이 있던날, 나만의 결승선을 확인했다

by 마부자

막내는 어제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준다는 핑계로 외박을 했다. 예전 같으면 문 앞에서 한참을 설교했을 것이다. “집이 호텔이냐”는 말도 나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간섭이 잔소리로 들릴까 싶어 조용히 허락했다. 허락이라기보다, 인정에 가까웠다. 아이는 자라고 있고, 나의 기준은 점점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일요일 아침이면 아내는 해가 중천에 떠야 겨우 눈을 뜨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매월 셋째, 넷째 주는 아내가 볼링 대회에 참가하는 날이다. 늘 그렇듯 나는 매니저가 되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차 키를 챙기고, 시간을 계산하고, 대회가 끝나는 시점을 가늠하는 것이 나의 루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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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은 부득이하게도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대구마라톤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볼링장이 대구 시내 한복판에 있어 가는 코스 전체가 마라톤 코스로 지정되었다. 차 없는 거리. 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멈춘 도시. 그래서 아내는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다.


외출을 준비하면서도 아내는 투덜거렸다. “이 추운 날 마라톤은 왜 하는 거야.” 그 말이 괜히 귀엽게 들렸다.


누군가는 추위를 뚫고 42.195km를 달리고, 누군가는 볼링핀을 향해 공을 굴린다.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을 건너고 있다.


아내는 지하철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평소 같으면 내가 운전대를 잡았을 것이다. 오늘은 현관에서 “잘 다녀와”라고 말하는 것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매니저가 아닌 관중이 된 기분이었다.


조용해진 서재에 앉아 일주일을 돌아보았다. 이번 한 주의 마라톤에서 나는 기록을 세우는 주간이 아니었다.

대신 내 속도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감기 하나에도 긴장해야 하는 몸.

무기징역이라는 단어 앞에서 무거워졌던 마음.

라스콜니코프의 고뇌와 현실의 판결이 겹쳐졌던 날.


몸과 마음이 동시에 과열되었던 순간들이 한 주 안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달리지 않았다. 대신 생각했다.


마라톤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들 한다.

%EC%8A%A4%ED%81%AC%EB%A6%B0%EC%83%B7_2026-02-22_190525.png?type=w1 사진자료: 대구MBC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완주라고

이번 주 나의 완주는 아마도 ‘무리하지 않기’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도, 병원에 다녀온 하루도, 햇살을 가만히 바라본 하루도 모두 그 완주의 일부였다.


막내의 외박은 나에게 또 다른 의미였다. 아이가 세상 속으로 조금 더 멀리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 예전에는 통제하려 했던 거리감이 이제는 존중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깨달음.


부모의 역할도 마라톤과 비슷한 것 같다. 초반에 힘을 다 쓰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오래 지켜보고, 때로는 뒤에서 응원하는 긴 레이스.


대구마라톤의 결승선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이번 주 결승선은 여기인 것 같다.

달리지는 않았지만, 방향을 확인한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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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아내가 속한 볼링팀이 2위를 했다고 웃으며 돌아왔습니다. 좋은 결과에 감사했습니다.

글쓰기 책을 읽으며 내 글에 조금은 더 신경을 쓰는 나를 발견합니다. 조금 성장한 나에게 감사했습니다.

며칠전 주문한 찜질팩 덕분인지 어깨 통증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저렴하면서도 좋은 효과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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