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갑상선 세침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우리는 괜히 말수가 줄어든다.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절차인데도, 그 곳으로 향하는 운전대를 잡은 손의 감촉은 여전히 낯설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준다.
결과는 단순 물혹이었다. 의사의 설명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모니터를 한 번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1년 뒤에 다시 보자라는 말을 듣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동안 마음속에서 키워온 불안이 이렇게 간단히 정리되는 병원이라는 공간은 늘 그렇다. 몇 달을 고민하게 만들고, 정작 결론은 몇 분 만에 내려버린다.
아무튼 작년 10월 검진 이후로 우리 부부에게 큰 병은 없다는 확인을 다시 한 번 받은 셈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큰 병이 없다’는 말이 과연 정확한 표현일까. 지난 2년 동안 아내와 나를 번갈아 찾아왔던 입원과 투병의 시간들이 결코 작았던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사람의 기억은 자기 보호 본능이 있는 모양이다. 지나간 고통은 조금씩 흐려지고, 남아 있는 것은 결과뿐이다.
병원에 갈 때부터 하늘은 유난히 무거웠다. 금방이라도 무언가 쏟아질 듯 단단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아내와 외식을 할까 잠시 이야기했지만, 하늘의 기세를 보며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괜히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는 데에 쉽게 합의했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순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우리가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자마자, 비는 이내 눈으로 변했고, 곧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말했다.
베란다 창을 열고 바라본 대구는 순식간에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역대급이라는 말이 괜히 붙는 게 아니었다. 쏟아지는 눈은 마치 그동안의 불안을 덮어주려는 듯, 소리 없이 빠르게 쌓여갔다.
정말 오랜만에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삶은 어쩌면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하는 짧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불안을 안고 병원 문을 들어섰다가, 괜찮다는 말을 듣고 나오고, 하늘을 걱정하다가 눈을 선물처럼 맞이하는 것.
오늘 우리는 큰 병이 없다는 결과보다, 그 결과를 함께 듣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괜찮다는 말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웠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마음속에 있던 작은 불안이 오늘 사라졌습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절묘한 타이밍으로 인해 세차를 하는 수고도 덜고 세차비도 아꼈습니다. 감사합니다.
막내가 무알콜 맥주 심부름을 해주었습니다. 이제 아내와 서로 눈치보며 가위, 바위, 보를 하지 않아도 되니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