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5.문화의 날, 할인보다 더 큰 선물.

by 마부자

어제의 함박눈은 핸드폰의 사진첩 속에만 남아있고, 오늘의 하늘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맑았다. 도로 위에는 눈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어제는 분명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는데, 하루 만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정리되는 풍경을 보며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대구에서 눈구경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그 짧은 순간을 눈으로 직접 본 나의 운이 괜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라져버린 풍경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도 오래 지속되는 것보다 잠깐 스쳐가는 장면이 더 깊이 박히는 경우가 있다.


최근 블로그를 보면 영화 후기가 자주 보였다. <왕과 함께 사는 남자>를 보고 왔다는 글들. 천만은 아니지만 이미 오백만을 넘겼다는 소식도 들렸다.


재미있나 보다 싶어 주말에 볼까 하고 예매를 하기 전 달력을 펼쳤다가 문득 얼마 전 ‘별꽃’님이 알려준 문화의 날 행사가 떠올랐다.


오늘이 수요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예매창을 열었다. 정말 오후 5시 이후부터 1인 7,000원. 잠시 의심했다.


요즘 세상에 7,000원이라니.

거기다 토스로 인증을 하니 1인당 천 원씩 더 할인.

둘이서 12,000원.

순간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 보았다.

이게 맞나 싶어서.


6,000원에 영화를 본 게 언제였더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적어도 10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가격으로 시간을 사는 기분이었다.


괜히 공짜 기회를 얻은 사람처럼 들뜬 마음으로 극장으로 향했다. 아내는 직장이 근처라 30분 정도 일찍 나왔다.


그 30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바쁘게 살다 보면 함께 걷는 시간조차 예약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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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과 콜라는 원래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한 사람 몫이 공짜라고 생각하니 괜히 주문하게 되었다. 기다리면서 “우리가 영화 본 게 언제였지?” 하고 물었다.


서로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다 보니, 2021년 영화 <보이스>를 본 것이 마지막 인 것 같았다. 5년 전이라니 그 사이에 세월이 제법 흘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오후 5시 상영관은 한적했다. 사람은 많지 않았고, 그래서 더 좋았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스크린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생각보다 편안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미 많은 이들이 이야기했으니 굳이 덧붙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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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유해진 배우의 연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찔끔이 아니라 솔직히는 주륵이었다.

스스로 놀랐다.

이렇게 쉽게 울 사람인가 싶어서.


문득 이런 배우들은 예능은 잠시 쉬고 이런 영화들만 찍어줬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예능 속 친근한 이미지가 떠오르면 영화 속 감정이 흐려질까 봐.


물론 나만의 이기적인 바람이다.

배우는 배우의 삶이 있고,

나는 관객일 뿐인데도 말이다.


영화를 보고 인근 한식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거창한 메뉴도 아니었지만, 영화 이야기를 하며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시간이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하철을 타고 나란히 앉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마치 젊은 시절로 잠시 돌아간 사람들 같았다.


가끔은 나라에서 해준 것이 뭐가 있느냐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 정책 덕분에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하고, 10년 전의 가격으로 시간을 산 기분을 누렸다.


어제의 눈이 하루 만에 사라졌듯,

일상은 늘 무심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이런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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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할인 한 장이,

별것 아닌 영화 한 편이,

하루를 선물처럼 만들어주는 날.


오늘 나는 값이 싸서 좋았던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이 더 고마웠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행운은 거창하게 오는 것이 아니라,

수요일 오후 5시 상영관처럼 조용히 자리를 비워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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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블벗(별꽃)님 덕분에 아내와 계획하지 않은 데이트를 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나도 영화보고 눈물 흘릴줄 아는 남자구나 하고 남아있는 나의 감성에 감사했습니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만으로도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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