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8.25년 면허아내와 1개월 면허 막내의 운전연습

by 마부자

오늘 오전에는 아내의 볼링 매니저 역할을 수행했다.


볼링장이라는 공간에 있으면 늘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공을 굴리지는 않지만 묘하게 바쁜 사람이다.


가방을 들어주고, 점수를 확인해 주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한 팀의 일원처럼 움직이고 있다.


아내는 레인을 향해 공을 굴리고, 나는 그 뒤에서 조용히 매니저 역할을 수행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또 다른 역할을 떠올렸다.

오늘은 마음을 조금 크게 먹기로 했다.


바로 아내와 막내의 운전연습을 시켜주기로 한 것이다.


아내는 면허를 취득한 지 26년이 되었지만 운전석에 앉아 본 지도 26년이 된 사람이다.


면허증은 그저 신분증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장롱면허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여러 번 운전을 가르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내가 운전을 안 하는 게 대한민국 도로체증 해결에 도움이 되는 거야.”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

“신랑이 기사도 해주고 매니저도 해주니까 나는 그냥 사모님 역할로 만족할게.”


그 말에는 나름의 논리도 있었고, 무엇보다 단단한 결심도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 논리를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막내가 면허를 따고 연습을 한다고 하니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뜬금없이 아내가 말했다.

“나도 한번 배워볼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웃었다.


아, 역시 사람에게는 때라는 것이 있구나. 억지로 끌고 가려 할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시작되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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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아내와 막내를 데리고 동네 인근의

인적이 가장 드문 곳으로 향했다.


말은 운전연습이지만 사실 내용은 단순했다.

아무도 없는 왕복 4차선 도로에서 앞으로 가는

연습이었다.


운전이라는 것이 결국 처음에는 그 한 가지다.

앞으로 가는 것.


아내는 생각보다 덜 긴장했다.

물론 운전대를 잡은 손에는 약간의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그래도 처음치고는 꽤 괜찮았다.


차가 크게 흔들리거나 급정거를 하는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 못하겠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늘은 꽤 성공적인 날이었다.


막내는 역시 달랐다.

젊음의 차이일까, 아니면 얼마 전까지 학원에서 배운 기억이 아직 생생해서일까.


생각보다 능란하게 운전을 했다. 차선을 맞추고 속도를 조절하는 모습이 꽤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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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수석에 앉아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세월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 한쪽에서는 이제 처음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운전대를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다.


같은 차 안에서도 시간이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 같다.


안전하게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며 이번주의 나를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비가 내리던 날에는 책을 읽으며 스무 살의 사랑을 떠올렸고, 정월대보름에는 달을 보지 못한 채 책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아내의 생일 아침에는 미역국 냄비를 지키며 하루를 시작했고, 어떤 날은 새벽 두 시에 잠을 이루지 못해 서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치과에서는 몇 달 동안 이어진 치료가 끝났고,

도서 인플루언서 신청을 하며

자존심과 오기 사이를 잠시 오가기도 했다.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서는 신혼부부보다 부모의 자리가 먼저 떠오르는 순간도 있었다.


이렇게 돌아보니 이번 한주는 하루하루가 꽤 다양한 장면으로 채워져 있었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은 거창한 변화보다 이런 작은 장면들로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운전을 배우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준비한다.


그렇게 각자의 속도로 조금씩 앞으로 간다.

오늘 아내와 막내가 천천히 차를 앞으로

움직이던 모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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