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7.3개월 마다 반복되는 확인을 위한 기다림

by 마부자

예고도 없이 찾아왔던 편도의 불청객은 여전히 내 삶의 한쪽에 흔적처럼 남아 있다.


강한 항암과 방사선의 시간을 지나며 겉으로는 사라졌지만, 완전히 떠났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조심스러운 존재다.


그래서 나는 3개월마다 그 녀석이 정말 떠났는지를 확인하러 병원으로 향한다.


지난 12월 PET-CT에서 이상이 없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숨을 조금 길게 내쉴 수 있었다.


이제는 일반 CT로 확인해도 된다는 말은, 어쩌면 “조금은 괜찮아졌다”는 신호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조건이 붙어 있었다.

‘지켜보자’는 말. 그 말은 늘 안심과 긴장을 동시에 품고 있다.


나는 지난 3개월을 나름대로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잘 관리했다’기보다 ‘잘 버텼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운동을 줄이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참고, 나름대로 몸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선택들을 반복해왔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는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할까.


병원에 가는 날이면 늘 비슷한 감각이 찾아온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몸의 신호들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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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있던 목 마름도, 늘 있던 근육의 뭉침도 오늘은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좌석에 앉아 알베르까뮈의 <페스트>를 꺼내 읽었다.

잠시 뒤 기차가 수서역에 도착하면 묘한 풍경이 펼쳐진다. 유독 빠르게 걷거나 거의 뛰듯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목적지는 대부분 같다.

삼성병원으로 향하는 셔틀버스.

여유있게 도착한 나도 모르게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섞여 걸음을 재촉한다.


역시 줄은 이미 길게 늘어서 있다. 그 줄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나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각자의 싸움은 결국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병원에 도착하면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


채혈을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CT를 위해 대기하는 시간.

그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기다림은 이상하리만큼 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


40여 분의 기다림 끝에 손등에 바늘이 꽂히고, 다시 촬영실 앞에 앉는다. 그리고 잠시 후, 조영제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찾아온다.


혈관을 타고 퍼지는 뜨거운 감각.

몸이 순간적으로 낯설어지는 느낌.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시간이다.


촬영은 금방 끝난다. 고작 5분.

그러나 그 5분을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묘하게 현실을 보여준다.


결과는 다음 주 월요일. 다시 세 명의 의사를 만나야 한다.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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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깊이 잠들었다.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창밖에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되짚는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서서 저녁 7시 30분에 돌아오는 하루.

단 하나의 검사를 위해 흘려보낸 시간.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볍다.


아마도 오늘은 결과를 확인한 날이 아니라, 지난 3개월을 버텨낸 나 자신을 확인한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하게 건강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

그리고 또다시 다음 3개월을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오늘 하루는 검사를 받은 날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날로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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