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9.협상이라기보다, 나의 입장만을 앞세운 압박

by 마부자

비가 그치고 난 다음날의 하늘에는 옅은 푸른빛 위에 양떼구름이 넉넉하게 펼쳐져 있었고,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유난히 따뜻했다.


오전은 늘 그렇듯 책과 함께 보냈다. 점심이 지나고 나니 몸이 조금 굳어 있는 것 같아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느껴보고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현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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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습지로 향하던 길에 도로 주차장 한편에 낯선 캠핑카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차량의 상태로 보아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깔끔하고 반짝이는 모습이었다.


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 나 자신을 보며 묘한 감정이 스쳤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캠핑 클럽 운영진까지 맡았던 자칭 캠핑 매니아였고, 캠핑의 본질은 텐트라고 굳게 믿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캠핑카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취향이 변한다는 말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 순간, 4월 말에 전라도에서 열리는 캠핑 모임이 떠올랐다. 후배의 권유에 못 이겨 신청은 해두었지만 아직 마음은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텐트에서는 절대로 잘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캠핑카를 빌려가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나 혼자 하게 되었다.


벤치에 앉아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캠핑카를 대여해주는 곳이 있었다. 이왕 나온 김에 운동도 할 겸 직접 가보기로 했다.


산책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 도착한 대여점에서 본 캠핑카는 바닥난방과 에어컨은 물론이고 침실, 화장실, 샤워실까지 갖춘 말 그대로 이동식 집이었다.


구경을 마치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다. 비용이었다. 2박에 71만 원이라는 금액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계산이 시작되었다.


렌터카 비용과 숙박비를 생각하면 아주 터무니없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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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금액을 듣는 순간 내게 하나의 조건을 제시했다. 50만 원에 협상이 되면 가겠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20만원이나 조정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물어보는 것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사장님께 다시 말을 건넸다.


사장님은 온화한 표정으로 5만 원 정도는 조정해줄 수 있다고 답했다. 여기서 멈췄다면 아마도 오늘은 평범한 상담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 50만 원은 가능하겠냐는 질문을 던진 순간 사장님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의 온화함은 사라지고, 현실적인 선을 분명히 긋는 단호한 표정이 되었다. 그 반응을 보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나는 분명 협상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상대방에게 무리한 요구를 던진 것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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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것은 협상이라기보다, 나의 입장만을 앞세운 일종의 압박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조금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기준은 온전히 나의 계산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상대의 입장이나 기준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상황을 끌고 가려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협상이라는 것은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의 기준을 이해하고 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균형을 찾기보다는, 이미 정해둔 답을 상대에게 받아내려 했던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 순간의 대화는 자연스러운 교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경험은 단순히 가격을 깎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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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내가 어떤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어보는 것은 분명 공짜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질문이 담고 있는 태도와 마음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때로는 그 한마디가 상대의 표정을 바꾸고, 대화의 온도를 바꾸며, 관계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다르게 묻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한 질문으로.


어쩌면 그 작은 차이가, 같은 말이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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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봄바람을 맞으며 걸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퇴사를 하고 1년만에 협상을 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책로가 정비되어 자전거과 보행자가 이제 부딪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안전하게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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