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1.나는 왜 신중한 선택을 하고도 흔들릴까

by 마부자

아침부터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가 내리고 흐린 날이 이어졌는데, 오늘은 마치 계절이 한 걸음 먼저 나아간 것처럼 밝고 또렷한 날이었다.


오전에 아내가 화장품이 떨어졌다며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달라고 했다.


하나만 사면 금방 끝날 일이었지만, “기왕 사는 김에”라는 말이 붙는 순간 이야기는 길어졌다.


배송비를 아끼기 위해 헤어에센스부터 립스틱, 팩트까지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사이트를 열어놓고 이곳 저곳을 오가며 가격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andrespradagarcia-online-6817350.jpg?type=w1

이쯤 되면 쇼핑이 아니라 작은 프로젝트에 가깝다.

문제는 늘 비슷한 방식으로 발생한다.


분명 같은 제품을 고르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까지는 완벽하다. 그런데 막상 주문을 마치고 나면 묘한 불안이 찾아온다.


다시 확인해 보면 용량이 다르거나, 제품 번호가 다르거나, 뭔가 미묘하게 다른 제품인 경우가 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결론이 생기면, 확인은 점점 형식이 된다.


결국 주문과 취소를 반복하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티격태격을 하고, 1시간 남짓을 보내고 나니 묘하게 지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나름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 작은 만족을 안고, 아내의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함께 집을 나섰다.


아파트 입구를 지나던 중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나무들에 활짝 꽃이 피어 있었다.

KakaoTalk_20260321_202817572.jpg?type=w1
KakaoTalk_20260321_202927395.jpg?type=w1

하얗게 피어난 꽃이 햇살을 받아 더 또렷하게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인데, 요즘은 이상하게 이런 장면 앞에서 멈추게 된다.


약속 시간보다 볼링장에 일찍 도착해 필요한 주방용품을 사기 위해 인근의 다이소에 들렀다.


분명 주방용품만 사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화장품 코너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아마도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이런 순간에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시 아까 주문한 것과 같은 제품이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더 나은 선택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그 마음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심조차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보다 더 명확했다.


우리가 한 시간 동안 고민했던 그 제품들이, 그곳에 3천 원에서 5천 원 사이의 가격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아내와 나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웃음인지 허탈함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 자리에서 다시 제품을 사고, 오전 내내 했던 선택의 과정을 아무렇지 주문 취소로 지워버렸다.


볼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그날 하루를 천천히 되짚어보게 되었다.


우리는 분명 충분히 고민했다고 믿는다. 비교하고, 가격을 따져보고, 나름대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꽤 이성적인 선택을 했다고 확신한다.

good-1122969_1280.jpg?type=w1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확신은 오래 가지 않는다.

선택을 마친 이후부터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혹시 더 좋은 선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금만 더 찾아봤으면 더 싸게 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시작된 비교는 아주 빠르게 우리의 선택을 흔들어 놓는다.


선택의 순간에는 분명 확신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끝없는 비교가 따라붙는다. 그리고 그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방금 전까지 만족스러웠던 선택은 어느새 아쉬운 선택으로 바뀌어 버린다.


마치 누군가가 뒤늦게 후회라는 색을 덧칠해 놓은 것처럼.


생각해보면 사람은 자신의 선택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견디는 데에 서툰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미 지나간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다른 선택지를 들춰보며 스스로를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우리가 확인할수록 더 넓어진다.

jarmoluk-strategy-1080528_1280.jpg?type=w1

찾으면 찾을수록 더 나은 선택지는 반드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다시 흔들린다.


조금 전의 나를 부정하고, 조금 전의 선택을 의심한다.

이 과정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확신보다는 가능성에, 만족보다는 비교에 더 쉽게 끌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선택을 잘하지 못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선택 이후에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지나온 길을 계속 확인하다 보면, 앞으로 가는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질 수밖에 없다.


모든 선택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 선택을 한 순간의 나를 부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이미 지나간 선택 앞에서

“그때의 나는 그만큼 최선을 다했다”라고

조용히 인정해주는 것.


아마도 그것이,

선택을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선택 이후를 잘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ChatGPT_Image_2026%EB%85%84_2%EC%9B%94_3%EC%9D%BC_%EC%98%A4%ED%9B%84_09_05_55.png?type=w1

오늘도 감사합니다.^^


거리에 핀 꽃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출 수 있는 나의 여유에 감사합니다.

차창 너머로 들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아내와 차안에서 웃을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7게임을 치고도 더 칠까 말까를 고민하는 돌아온 아내의 체력에 두려움과 감사함이 공존했습니다.






이전 20화0320.20년간 함께 일한 사람이 말해준 진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