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모두가 바쁜 아침이었다. 아내는 출근, 막내는 등교, 난 병원.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아침은 늘 그렇듯 분주했지만, 그 안에는 묘하게 익숙한 리듬이 있었다.
누군가는 하루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하루를 버티러 나선다.
그리고 나는 그 중간쯤 어딘가에서, 오늘도 병원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오전 7시, 지하철은 이미 하루를 먼저 시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손잡이를 붙잡고 서 있는 사람들,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세계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그 사이로 갑자기 공간을 뚫고 나오는 소리가 있었다.
제법 큰 음량의 트롯 경연 방송 소리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아무 근거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 소리의 주인은 아마도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변의 어르신들을 훑어보던 그 순간,
그 소리의 주인은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두 학생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꺼내 들었던 그 생각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를 그 짧은 순간에 확인해버렸다.
트롯을 듣는 사람은 어르신일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크게 틀어놓는 사람도 어르신일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아무 의심 없이 연결해버린 순간,
나는 그 사람을 보기도 전에
이미 판단을 끝내버린 셈이었다.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일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를 꽤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쉽게 단정 짓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었고,
누군가를 평가할 때도 나름의 기준과
이유가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오늘 아침의 나는 아무런 확인도 없이,
아무런 고민도 없이,
그저 익숙한 이미지 하나로 누군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학생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조용히 해달라는 말을 건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괜히 말 꺼냈다가 더 불편해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 설득은 꽤 논리적으로 들렸지만, 동시에 비겁하게도 느껴졌다.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 나오면서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소음 때문이 아니라, 그 소음을 둘러싼 내 생각과 태도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쉽게 판단하고, 쉽게 침묵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오늘 하루의 시작이 조금 무거워졌다.
병원에 도착해 하루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전 10시 20분, 혈액종양내과를 시작으로 세 명의 주치의를 차례로 만났다.
짧게는 몇 분, 길어도 10분 남짓한 진료를 위해 나는 그 몇 배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의자에 앉아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몸은 점점 지쳐갔다.
모든 일정이 끝났을 때는 오후 3시 30분이었다.
하루가 훌쩍 지나 있었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안도감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다른 생각 하나가 따라붙었다.
이 결과를 꼭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여 직접 와서 들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설명을 듣기 위해 1시간, 때로는 2시간을 기다리는 일.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하루의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버리는 경험.
물론 결과에 이상이 있다면, 얼굴을 보고 충분한 설명을 듣는 것이 맞다. 그러나 아무 문제가 없는 경우라면, 굳이 이 과정을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의 선입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나의 선택, 그리고 병원에서의 긴 기다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나는 그 안에서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는 여전히 고쳐야 할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바꾸지 않는 방식들 속에 머물러 있었다.
아마 오늘 하루는 특별한 날로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나는 나를 조금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날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다행히 검사결과 관리가 잘 되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딸이 엄마의 생일 겸 아빠의 건강 회복을 축하하는 의미로 저녁을 샀습니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지난 3개월을 또 무사히 잘 버텨낸 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