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7.그 어느 제철 음식보다 깊었던 함께라는 음식

by 마부자

독감으로 고생을 하던 딸이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며 저녁을 함께 먹자고 연락을 해왔다.


저녁은 본인이 사겠다고 했다. 대신 메뉴는 본인이 정하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요즘 봄도다리가 맛있다며 함께 가자는 말이었다.


다른 음식은 혼자 먹어도 괜찮은데, 이상하게 회는 혼자 먹기 좀 그렇다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다시 회를 먹을 수 있는 아빠가 되었으니 함께 제철 음식을 먹어보자는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한때 나는 고기보다 회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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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도다리, 여름에는 민어, 가을에는 전어, 겨울에는 방어.


그 계절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계절의 생선을 먹는 것이라고 믿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투병 이후, 날음식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회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횟집에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그때의 회는 예전 같지 않았다.


입맛이 변한 건지, 아니면 소주가 없어서 그런 건지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딸은 웃으며 말했다.

아마 같이 먹어주는 자기가 없어서 그런 것일 거라고.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아빠를 위해 황금 같은 불금 시간을 내주겠다고.


그 말이 괜히 고맙고, 또 조금은 웃음이 났다.


아내는 회사에서, 딸은 퇴근길에, 막내는 학교에서,

그리고 나는 집에서 각자의 출발점에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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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흩어졌던 우리가 한곳에 모였다.


횟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짠 바닷물 냄새와 비릿한 향이 코끝에 닿았다.


예전에는 조금 불쾌했던 그 냄새가

오늘은 이상하게 반갑게 느껴졌다.


우리는 수족관 앞에 서서 펄떡이는 생선들을 바라봤다.


회를 고르고, 아내가 좋아하는 산낙지를 추가하고, 몇 가지 해산물을 더 주문했다.


그리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회가 나오고, 딸과 아내, 막내는 소주를 한 잔씩 기울였다.


나는 무알콜 맥주로 대신했다.

회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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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에 닿는 순간,

도다리 특유의 담백함이 먼저 스쳤고

뒤이어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이 입안에 천천히 번져갔다.


씹을수록 부드럽게 풀어지면서도

바다의 짠 기운이 아주 얇게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맛은 그대로였다.


아니, 어쩌면 예전보다 더 또렷했다.

달라진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 맛을 받아들이는 나였다는 것을.


딸은 젓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래서 제철 음식은 먹어줘야 한다니까.”


그리고는 한 점 더 집어 들며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조금은 자랑스럽게,

그러나 꽤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맛이라는 것은 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으로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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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음식이라도 누구와 마주 앉아 있는지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그래서였을까.

얼마전 먹었던 더 깔끔하고 정갈한 횟집에서

먹었던 회는 그저 비릿한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딸의 웃음과, 아내의 한마디,

막내의 자연스러운 농담이

회 한 점 한 점 사이에 스며들어 있었다.


어쩌면 음식의 맛은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식탁에 앉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삶이라는 것은

이렇게 특별하지 않은 순간들이

조용히 쌓여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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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가족에게 감사합니다.

이제는 회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나의 회복된 미각에 감사합니다.

봄날의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식당으로 향하는 그 길 내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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