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1.창고정리를 하다 뜻밖의 시간을 다시 만났다

by 마부자

지난주말 아내가 베란다의 화분과 다육이를 정리했다.


화분을 옮기고 자리를 다시 만드는 일을 끝내고 나니 마지막으로 베란다 안쪽 창고가 남았다.


나는 그곳만큼은 크게 손댈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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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창고 문을 열자마자 내 예상은 가볍게 빗나갔다. 그 안에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제법 많았다.


분명 다 치웠다고 생각했던 캠핑용품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물건을 꺼낼수록 정리를 하는 것인지, 오래된 시간을 발굴하는 것인지 조금 헷갈렸다.


내 집 안 창고인데도 묘하게 낯설었다.

익숙한 공간 안에도 이렇게 잊힌 시간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우습고 또 조금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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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놀라웠던 것은 스키부츠였다.

그것도 20년이 훌쩍 넘은 물건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부츠를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


예전에는 겨울이 오면 당연한 듯 챙기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그 존재 자체를 완전히 잊고 살고 있었다.


한때는 분명 내 삶의 일부였던 것이 시간 속에서

베란다 창고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한때는 꼭 필요했고 좋아했던 것들도 더 이상 쓰지 않게 되면 조용히 구석으로 물러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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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해보면 물건은 주인을 닮는 것 같다.


나는 무언가를 정리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물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감정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고 한때 좋아했던 마음들도 그랬다.


끝났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잠시 덮어두었을 뿐인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그것들이 다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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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물건 하나가 툭 튀어나오듯

잊었다고 생각한 마음도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그럴 때면 나는 비로소 내가 정리한 것이 아니라 미뤄둔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정리란 단순히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지나쳐왔는지 다시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 창고를 정리하고 나는 생각했다.


삶은 끊임없이 앞으로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렇게 가끔 멈춰 서서 뒤에 남겨둔 것들이

불쑥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내 시간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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