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출근하고 난 뒤 잠시 소파에 앉아 TV를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별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굿 윌 헌팅을 보게 되었다.
이미 수차례 본 영화인데도 이상하게 리모컨을 내려놓게 만드는 힘이 있는 영화다.
결말을 알고 있는데도 보게 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천재성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상처 입은 한 사람이 누군가의 진심을 통해
조금씩 자기 안의 벽을 허물어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윌(맷데이먼)은 분명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다.
누구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머리를 가졌지만,
정작 그는 그 능력을 세상과 연결하는 다리로 쓰지 못한다.
오히려 그 재능이 타인과의 관계를 밀어내는 방패처럼 느껴진다.
사람보다 먼저 상대를 간파하고,
상처받기 전에 먼저 선을 긋고,
버림받기 전에 먼저 등을 돌린다.
그 모습이 안쓰럽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몸에 밴 방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더 오래 남는 사람은
윌만이 아니라 숀(故 로빈윌리엄스) 교수였다.
이영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숀교수가 윌의 평가서를 작성하다 우연히 알게된
윌의 어릴 적 가정 폭력에 대한 장면이다.
숀교수는 윌에게 말한다.
“네 잘 못이 아니다”
그는 윌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며 억지로 끌고 가지도 않는다.
대신 그 아이의 상처 앞에서 같이 멈춰 서 준다.
머리로 분석하기보다 가슴으로 기다려주고, 판단하기보다 끝까지 곁에 있어준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대단한 설득이나 정답이 아니라, 결국 진심으로 한 사람을 바라봐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관계란
서로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자기 마음을 열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일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버림받을까 두려워 먼저 밀어내는 사람도 있고,
상처를 알기에 쉽게 다그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조금씩 바꾸어놓는다.
오늘 다시 본 굿 윌 헌팅은 천재의 성장담이 아니라, 상처를 이해받은 한 사람이 비로소 자기 삶 쪽으로 걸어가는 이야기로 남았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좋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힘은 결국 사랑을 가장 닮은 이해라는 것을 조용히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