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
늘 한 번쯤 장롱을 정리하게 된다.
두꺼운 옷을 밀어 넣고 가벼운 옷을 꺼내는 일은
계절을 바꾸는 일이라기보다
시간의 자리를 바꾸는 일에 가깝다.
겨울 장롱 깊숙히 넣어 두었던 옷들을
다시 꺼내며 정리를 하던 도중 주머니속에서 예전에 다니던 직장의 명함을 발견했다.
이미 작년에도 한차례 옷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이 명함이 그대로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명함 한 장인데 이상하게 묵직했다.
그 작은 종이 안에는 꽤 오랜 시간의 내가 들어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고,
정해진 자리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던 시절.
그때의 나는 그것이 당연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힘들어도 계속 가야 하는 길이라고 여겼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하루를 그저 반복하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 그 명함을 손에 들고 보니,
그 시간은 이미 내게서 아주 멀리 와 있었다.
내 이름은 같지만 그 명함을 들고 다니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상한 건 그 명함을 보고 아주 슬프지도,
그렇다고 후련하지만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조금 낯설고 조금 뭉클했다.
분명 내가 살았던 시간인데도 꼭 다른 누군가의 이력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회사를 30년을 다녔고,
그 안에서 내 몫의 책임을 다하며 살았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는 것인데,
막상 그 흔적을 손에 쥐고 있으니 지난날이 자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겨울이 끝난 자리에 봄이 오듯,
그렇게 조용히 물러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니 2년 가까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그 옷을 꺼낸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난 퇴사한 뒤 그 옷을 일부러 입지 않았던 것 같다.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몸이 먼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옷을 입는 순간
예전의 내가 너무 선명하게 돌아올까 봐.
혹은 이미 끝난 시간을
다시 몸에 걸치는 기분이 들까 봐.
오늘 장롱 속의 명함은 단지 버리지 못한 것이 꼭 미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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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은 정리되지 않아서 남아 있고,
어떤 것은 다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의미를 알아차리게 된다.
오늘 발견한 명함도 내게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그 명함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다시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아직 버릴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이제는 그것도 내 삶의 한 장면이었다고 천천히 인정해주고 싶어서였다.
한때 분명히 내 전부 같았던 시간을 다시 만난 날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제는 붙잡기보다 지나온 계절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명함 한 장을 통해 알게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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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좋은 책 한권을 만나 보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하루였음에 감사합니다.
여름 옷을 꺼내며 작년의 여름을 생각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올 겨울 따뜻한 한 해를 만들어준 나의 겨울 옷들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