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 주 동안 <나의 친구들>이라는 책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읽는 동안에도 그랬지만,
오늘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책의 내용을 떠올리다 보니 이야기는 자꾸 책 밖으로 번져 나왔다.
요아르, 알리, 테드, 킴킴.
책 속의 네 아이가 지나간 유년의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나 역시 내 유년의 골목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던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가장 선명한 기억이 되곤 한다.
책 속 아이들의 장면을 읽으며
문득 내 어린 시절에도 분명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1982년 경기도 안성의 외갓집에서 살며
발가벗고 냇가에서 고기를 잡고,
강물에 국수를 삶아 먹고,
해가 질 때까지 소 여물을 베며 놀던 친구들.
그 시절의 우리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았지만,
하루를 다 써도 아깝지 않을 만큼 함께 노는 법을 잘 알았다.
특별한 약속도 없었고, 연락할 전화도 없었지만
늘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시절의 우정은 지금 생각하면 참 투박했고,
그래서 더 진심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친구들을 하나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얼굴도 흐릿하고 이름도 희미하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알 길도 없고,
다시 만날 수도 없다.
분명 내 어린 시절 한가운데를 함께 지나온 사람들인데, 시간이 흐르자 마치 물 빠진 사진처럼 조금씩 지워져버렸다.
그 사실이 오늘은 유난히 아쉽고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토록 가까웠던 존재들이
이제는 기억 속에서도 또렷이 붙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 분명히 있었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이름을 잊었어도,
얼굴을 떠올릴 수 없어도,
그 시절의 웃음과 물소리와 젖은 흙냄새만은 어딘가 내 안에 남아 있다.
어쩌면 친구는 사람의 형태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한 시절의 공기처럼 마음속에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선명했던 것들도 세월 앞에서는 흐려지고,
그토록 가까웠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기억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 사실은 조금 슬프지만,
동시에 그래서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 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친구란
잃어버린 이름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고,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오랜 친구에게 전화했습니다. 짧은 통화였지만 전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책들이 도착했습니다. 늘 새책이 오면 반갑고 감사합니다.
월급날은 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