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취미 선택의 가이드라인
생계, 의무 등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직업, 가족 관련), 본능적 욕구(번식, 잠, 식욕), 습관/중독적인 일(술, 담배, 커피 外)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합니다. 단순한 재미로.
누군가에게는 쓸데없어 보이는 일을 노력과 시간, 돈을 들여서 꾸준히 하는 경우 종종 취미라는 이름까지 달게 됩니다.
저도 비교적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다 보니 문득 ‘재미’란 무엇인가, 무엇이 어떤 취미를 지속적으로 하게 만드는 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분류해 본 재미의 3가지 요소는 타인과의 공감, 신체 능력의 확장, 그리고 낯섦입니다.
진화 심리학적으로 보면 왜 이러한 요소를 즐기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생존하며 후손을 남겨와 지금의 우리들이 이러한 요소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대충 짐작은 됩니다.
타 인간들과의 공감을 기반으로 상호 작용 및 연대를 선호하여 집단을 이루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며, 학습, 성장, 도구 사용 등 지속적 육체적, 지적, 지식적 등의 신체 능력 확대를 선호했던 것 역시 생존과 동일 유전자 집단 번식에 유리했을 것이고, 새로운 자원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짝짓기 대상을 지속적으로 찾는 활동 등 낯섦을 동경하는 것 또한 그로 인한 위험요소를 상쇄하고도 생존과 번식에 이득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타성처럼 개인단위로는 때로는 생존, 번식에 불리했을 수는 있어도 유사 유전자를 공유하는 집단 단위로는 보면 분명 이득이 있었을 걸로 짐작이 됩니다.
자영업자 모임에 불과한 지역별 개원의 협회 내에서의 치열한 감투 싸움,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예외 없이 급증하는 국가별 해외 여행객 수, 제도적, 도덕적 강제 사항인 일부 일처제에 대한 광범위한 일탈, 과잉 정치, 과잉 의견, 과잉 뉴스의 요즘 사회 추세, 30~40년 만에 전 세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버린 스마트폰, 등을 보면 3가지 재미 요소 선호가 어느 정도 보편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취미’로 하는(했던) 몇 가지 활동을 이 3가지 요소로 보면 대충 맞는 것 같습니다.
20년 정도 탔습니다. 청룡 쇼바 올린 125cc 바이크로 시작하여 드랙스타, MT01 등 약 7대의 바이크를 거쳐 지금은 2010년식 R1200RT와 100cc 스쿠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왕복 100km 정도의 출퇴근은 물론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일주도 몇 번 했습니다.
같은 기종이나 유사한 라이딩 특성을 가진 기종들로 구성된 바이크 동호회 사람들과 하는 라이딩은 안 해본 사람들이 짐작하기 어려운 묘한 쾌감을 줍니다.
소수자들(바이크는 공도에서는 4륜차 대비 소수자, 약자입니다) 끼리의 연대의식, 초보자들을 안내, 지도해 주며 그들이 노련한 라이더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공동체 의식, 동호회 내에서 총무, 부회장, 시솝 등을 하며 얻게 되는 감투의 맛 등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에게 공통되는 일종의 ‘재미’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 먹고 서울에서 출발하여 정동진에서 점심을 먹으며 느낀 건데 이 바이크는 단순한 속도감이라는 것을 넘어서 달리기나 걷기라는 이동에 필요한 신체 활동 능력을 비약적으로 확대해 주는 측면에서 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아마 자동차 레이싱 관객의 느낌이나 제트스키, 수상스키 등을 타며 느끼는 재미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또한 연습을 거듭하고 선배들에게 배우면 코너링을 점점 능숙하게 되며 트랙에서 랩타임이 조금씩 줄게 되는데 이때 일종의 학습과 성장에 대한 재미가 생깁니다.
바이크 동호회 활동은 기본적으로 ‘여행’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매 주말 당일 라이딩은 물론이고 작은 단위로 며칠씩의 여행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다른 여행과 차이가 있다면 가기 위해서 타는 것이 아니라 타기 위해서 간다 정도랄까...
단체 라이딩은 항상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또한 새로운 바이크 기종에 대한 욕심과 관심이 있습니다. 2기통 타는 사람들은 4기통 궁금해하고, 크루저 타는 사람들은 소위 숑카 타보고 싶어 하고, BMW 타는 사람들은 할리 한번 타 보고 싶어 하고….
고등학교 졸업식 날 우연히 장롱에서 찾은 아버님의 미놀타 카메라 이후 TC-1, 미니룩스, Pen, 하이매틱시리즈 등의 필름 카메라, 필름 스캐너 포함하여 수십대의 카메라와 렌즈를 거쳐가며 사진을 찍었더랬습니다. 뭐 그래 봐야 그리 비싸거나 아주 고급 카메라도 아니었고 조카나 우리 애들 등 가족이나 키우는 고양이들과 바이크 사진들 등, 신변잡기류의 사진들 위주로, 사진이 취미라고 하지만 사실은 카메라가 취미인 전형적인 아마추어입니다.
지금은 A7S에 Zeiss 55mm, 16-35mm 딱 2개 렌즈와 Pen F 서브 카메라로 가끔 가족 여행 갈 때만 사진기 꺼내는 수준입니다.
사진을 찍어 가족이나 동호회에서 공유했을 때의 반응(감탄, 비판, 조언, 감사)들과 상호 작용하며 얻는 느낌이나 감정은 사진을 찍고 후처리 및 공유하는 수고를 충분히 상쇄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어제 소주 세병 먹고 새벽에 들어와 퍼져 자는 애의 예전 돌 갓 지나 첫 여행 했을 때 사진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떠 올릴 때의 감성은 기록과 기억 능력의 확대에 의한 혜택이라고 느껴집니다.
새로운 카메라, 필름, 렌즈에 대한 호기심, 동경, 이로 인한 지속적 쇼핑 및 중고 거래는 그 자체로 사실 상당히 재미있어 집사람의 등짝 스매싱을 기꺼이 감내하게 해 줍니다. 40년 넘은 Rokkor렌즈를 FE 프레임에 달고 수동으로 조절하며 출사 나갔던 때의 두근거림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Radio Control, 무선조종, 흔히 RC 하고 하는 취미가 있습니다. 무선, 원격으로 비행기, 자동차, 배 등을 조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전동비행기에 국한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비행기의 특성상 비행장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비행 금지 구역이 아니어야 하고 민가나 도로에서 거리가 있어야 하며 이, 착륙을 위한 평지가 일정한 길이 이상 있어야 하고 전깃줄이나 나무, 탑 등이 없는 비행 공역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해를 등져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비행장이 드물기에 동호회 차원의 움직임이 필연적입니다. 주말 좋은 날씨에 함께 환호 작약하고 새로운 기체의 처녀비행 시의 두근 거림을 함께 하고 추락해 너덜너덜 해진 기체에 짠한 마음을 함께 하며 성공적인 착륙에 함께 손뼉 치며 끈끈한 관계를 다져 가게 됩니다. (뭐 대부분의 취미 활동의 동호회에서 유사하겠지요)
우리는 3차원 세계에 살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일상생활은 2차원 움직임입니다. 즉 앞뒤, 좌우로의 직선 움직임과 좌우 회전만 우리 몸에 익숙합니다.(3 DOF, Degree of Freedom) 비행기로 따지면 Yawing만 있는 것입니다. 근데 비행기는 Yawing 외에 Pitching과 Rolling이 다 있습니다. 우리 몸에 익숙하지 않은 Rolling과 Pitching이 개입되고 또한 이것들이 서로 섞이는 순간(6 DOF) 이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 몸과 머리는 정지되어 버립니다. 즉 자전거를 처음 탈 때나 키보드로 타자를 처음 배울 때처럼 머리는 아는데 그게 손으로 연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RC 비행기를 처음 들고 비행장에 오는 분들 보면 100% 이륙하자마자 옆으로, 앞으로 기울며 땅을 항해 돌진하는 기체를 보며 ‘어어~’ 하며 비명만 지르지 손이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 만든 5개의 기체의 총 비행시간을 모두 합쳐봐야 30초가 안됩니다.)
어느 정도 반복 연습을 통하여 머리에서 손으로 일종의 길이 트여야 비행기 방향이 이리저리 바뀌어도 x, y, z 3축 회전운동과 3 방향의 직선 운동을 익숙하게 다루게 됩니다.
이는 자전거 배우는 것과 유사해서 몸에 익는데 좀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익숙해지면 몇 년을 쉬어도 금방 날릴 수 있게 됩니다.
(요즘은 PC나 스마트폰 기반 시뮬레이터들이 많아 거기서 먼저 이 공간의 움직임에 대한 것을 몸이 터득하도록 하기 때문에 혼자 처음 날리는데도 제법 오래 날리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즉 눈으로 본 비행기의 움직임에 대한 시각 정보와 6 DOF 세계에 대한 두뇌의 연산과 이를 손으로 전달하는, 일종의 신체 조응을 숙달하게 되는 과정인데, 여기에 묘한 쾌감이 있습니다. 마치 드럼을 처음 배울 때 사지절단이라고 하는, 양손과 두발이 완전 별도로 움직이는 것을 처음 하게 되었을 때의 쾌감, 엑셀(오른 손목), 클러치(왼손가락), 기어 변속(왼발목), 앞바퀴 브레이크(오른손가락), 뒷바퀴 브레이크(오른발목)를 동시에 조작하며 코너를 빠져나가는 바이크 위에서의 쾌감과 유사합니다.
조금 과장하면 초등학교 3학년 때 두 발 자전거로 넘어지지 않고 약 30m 정도를 처음 갔을 때의 감동이라고나 할까요…
머 어쨌든 이런 느낌을 주는 취미입니다.
(RC 비행기를 하게 된 이 후로 실제 비행기를 타게 되면 이착륙 때 속도를 재며 무지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착륙 때 얼마나 비행기가 취약한지 알게 되었거든요. ㅠㅠ)
또한 기체의 종류가 무지 다양하고 그에 따라 비행 특성이 다양합니다. 글라이더, 전익기(全翼機, Flying wing), 전투기, 고속기, 스케일기, 복엽기, Duct기, 등등. 새로운 기체, 구입 경로, 신제품, 다양한 부품 등으로 온라인 카페에서, 비행장에서, 단체 카톡방에서 서로 뽐뿌 주고받습니다. 남자 취미의 핵심 요소 중 하나라는 ‘지속적 소소한 쇼핑’이 필연적입니다. 그래서 추락하면 한숨 쉬다가도 새로운 기체를 할 생각에 눈이 반짝입니다. 물론 아주 비싼 기체도 있지만 보통은 10여만 원 정도면 꽤 괜찮은 것 살 수 있으니 RC 비행장에는 매주말마다 항상 2~3대의 처녀비행하는 기체가 있습니다. 새로운 기체의 비행 특성에 낯설어하며 동시에 동경합니다. 매주 어떤 형태든 새로움이 있습니다. 새 기체든, 모터를 바꿨던, 뭔가 세팅을 다시 해 왔든, 산산조각 난 기체를 다시 수리해 왔든…
10년 이상 해 왔던 이러한 취미나 골프 외에도 조금씩 해 봤던 드럼, 탱고 같은 경우에도 동일 한 재미의 측면이 있었고 외국어를 배우거나 조금씩 능숙해질 때도 유사한 재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향후 새로운 취미 활동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 취미가 주는 재미의 성격과 나와의 적합성을 사전 가늠하는 일종의 프레임워크로 사용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