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감상이란 무엇을 즐기는 것인가
절대적 정답은 아니겠지만 저는 크게 3가지(서로 배타적이지는 않을 듯해요)로 봅니다.
1. 조화의 결정체로서의 음악
2. 개인화된 경험으로서의 음악
3. 절대적 소리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음악
좋은 그림이나 사진에서 보는 여러 구성 요소의 조화로움도 물론 아름답지만 저는 이러한 조화의 아름다움을 시각화된 예술에서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훌륭한 요리에서 한 상에 올라온 음식들의 온도와 재료와 맛과 식감의 조화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붓글씨에서 구성과 모양의 조화에서 구성미를 감상하고,
최신 전투기나 곡식을 골라내는 키에서 기능과 외형의 조화에 의한 기능미를 보며,
할리데이슨 스포스터 50주년 모델에서 진화된 조화의 절정에 감탄합니다.
소리 조화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화음을 품고 있는 음악에서 이러한 조화의 아름다움은 필연적입니다.
화음뿐 아니라 음악은 많은 조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악기와 인간의 소리의 조화,
현과 관의 조화, 소리와 속도의 조화,
멜로디와 가사의 조화 등등...
그래서 아마 음악을 감상할 때 특정 음역대가 너무 강하거나 특정 악기가 너무 강조되면 오래 듣지 못하나 봅니다.
음악을 감상할 때 이러한 조화의 아름다움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김광섭의 서른 즈음에를 들을 때마다 노래도 좋지만 그 당시의 막막했던 시절과 당시 막 헤어졌던 여자 친구의 아련한 얼굴이 떠오르고, (지금은 얼굴도 기억 안 나네요...)
이등병의 편지를 들을 때마다 새벽 추위를 이기기 위하여 혼자 불렀던 산 꼭대기 초소가 생각나지만 나이 차이 좀 나는 집사람은 영화 JSA가 생각나는 것으로 봐서 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소소한 경험일 것입니다.
하지만 소소하기 때문에 강력하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가슴에 와닿습니다.
꼭 음악만 관련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개인의 감성적 경험에 강력한 매개로서의 음악도 '음악 감상'에 매우 주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프랑스 사람들이 공연했던 약간 간략 버전의 '마술피리'를 LG아트센터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오페라를 평소 많이 듣기는 했지만 오디오 설비를 쓰지 않고 육성으로 공연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처음 곡을 따악 듣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인간 목소리의 절대적 아름다움...
그 절대적 아름다움에 눈물이 살짝 났더랬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디오질'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기 인들 이런 소리를 어떻게 재생하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지요.
바이올린을 배우는 우리 큰애 레슨 받을 때 마루에서 잠깐 들었던 선생님의 시범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에 소스라치기도 하고 우연히 듣게 된 헤이리 카메라타의 첼로 독주 연주 소리에 흠뻑 젖기도 하고...
이런 소리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고품질 음원을 모으고 스피커를 바꾸고 헤드폰 바꿈질을 하나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원음에 한없이 가까운 소리를 내주는 기계가 좋은 건지, 소리를 더 아름답게 '착색'해 주는 기계가 더 좋은 건지...
슈베르트의 감성과 약간은 가벼우면서도 튀지 않는 피아노 그리고 정교수님의 목소리는 환상적 조합입니다.
그 소리와 감성과 멜로디의 조화는 듣는 내내 다음 순간을 기다리게 만듭니다.
또한 보리수는 옛~날 故최인호 선생님 원작의 '겨울 나그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다혜(당시 이미숙)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너무나 기억이 선명했던 멜로디로 남아 있습니다.(저의 첫 데이트였던 영화 관람이었죠)
보리수를 들을 때마다 강남역 근처의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그녀의 손을 잡던(처음으로!) 저의 쿵쾅대던 심장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해요.
B&O의 A8은 사람 목소리를 내는 데는 웬만한 등급의 헤드폰에 못지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A&K의 AK100과 함께 역시나 정교수님의 목소리를 훌륭하게 울려 줍디다. 아무래도 이어폰이다 보니 피아노 소리는 조금 뜨지만 인간 음성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데는 역시나 탁월하군요.
저에게 정교수님의 '보리수'는 위의 이 3가지 음악 감상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훌륭한 음원입니다.
다들 한번 들어 보시죠, 눈을 살짝 감고, 연인을 기다리다 바람맞은 '민우'의 쓸쓸한 뒷모습을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