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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가 Jun 17. 2020

단순하면서 친절할 수 있을까?

UI/UX, 미니멀리즘의 모순

"세상 참 살기 좋아졌다." 우리가 '꼰대'라 칭하는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혼잣말입니다. 어릴 적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는데, 나이가 들어 다시 떠올려보니 이제야 그 말이 슬슬 와 닿습니다. 과거처럼 지갑에 동전이나 회수권을 들고 다니며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며, 각종 서류를 떼러 동사무소로 뛰어간다거나 떡볶이가 먹고 싶어 신당동으로 향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심지어는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자동차는 알아서 잘 굴러갑니다.


헌데 한편으로는 세상이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몸만 편해졌을 뿐 배워야 할 것, 알아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거든요. 문명이 가져다준 이기의 이면은 늘 그랬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물건들이 생겨났고, 그러한 것들을 다루지 못하면 꼰대라 불리거나 도태한 늙은 자로 분류되기 십상입니다. 억지로라도 따라가야 다음 세대들과의 소통이 어느 정도의 가능해지며 그것이 반강요처럼 이뤄집니다. 게다가 최신 기기에 익숙한 우리라고 그것이 꼭 쉽지만은 않습니다.


메신저가 없던 시절처럼 통화를 했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이러한 복잡함과 과함에서 탈피하고자 언젠가부터 '미니멀 라이프'라는 생활 방식이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미니멀리스트'라 합니다. 개인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간 너무 복잡하게 살았나 봅니다. 미니멀리스트가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처분한 물건들. 그것이 중고시장에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고, 중고나라와 번개장터 등의 온라인 중고시장을 성장시킨 동력원으로도 작용했습니다. 국내 렌털시장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물론 장기적인 불황도 한 몫했고요. 문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미니멀 라이프에 적응하지 못하고 팔았던 것을 다시 사는 다소 모순적인 상황에 빠진다는 겁니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생활 방식의 최대 수혜자


여하튼 생활방식 자체가 '미니멀'하게 돌아가다 보니 그것이 속해있는 다양한 것들 또한 미니멀을 지향하게 됩니다. 우리의 밥벌이인 'UI 디자인' 또한 영향을 받습니다. 미니멀리즘이 바로 그것이며 그 철학 자체는 꽤 오래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플랫디자인이 7년 전인 2013년경, 윈도우8과 iOS7을 시작으로 디자인 실무에서 강력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플랫 한 디자인 형태를 쫓고 있고 그리해야 '촌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스큐어모피즘을 들먹이면 일순간 아재가 됩니다.


인스타그램 앱 아이콘의 변화


스큐어모피즘에서 플랫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잘 견디어낸 인스타그램을 살펴봅니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좌측의 아이콘과 우측의 도형으로만 이루어진 플랫 한 아이콘의 모습. 인스타그램이 출시된 2010년경, 그들이 출시 당시 우측의 아이콘을 사용했다면 과연 사용자들은 인스타그램을 설치했을까요? 우측의 아이콘만 보고 '사진과 관련한 애플리케이션이구나'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모를 일입니다. 물론 사실적이며 직관적이라는게 마냥 좋은 정보전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 없이 단순함에만 집착한 요즘 것들보단 나아 보입니다. 이런 발상 또한 꼰대스러울까요?


트렌드라는 요소를 걷어내 봅니다. UI를 다루는 디자이너 관점에서 이것을 다시 바라봅니다. 트렌드에서 벗어나야 문제점을 보다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꽤나 무뚝뚝한데?'


사람을 예로 들어봅니다. 상냥하고 친절해야 그 사람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습니다. 말도 많이 주고받아야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말이 짧아진다거나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건, 친해지고 난 이후에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친근해야 가능합니다. 익숙함과도 연관이 있죠. 며칠 전 만났던 친구처럼요.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아 보입니다


이 같은 고민들은 UI/UX 디자인을 하면서도 똑같이 하게 됩니다. '이걸 사용자가 알아볼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꽤 많은 디자이너들이 튜토리얼이나 툴팁으로 플랫디자인의 단점을 보완합니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했지만 결론적인 결과물은 각종 튜토리얼과 툴팁이 뒤섞여 사용자를 더 혼란스럽게 합니다. 디자인이 미니멀하다 하여 그것의 기능이 꼭 심플한 것은 아니니까요. 일부 기획자와 디자이너들은 미니멀한 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자 프로세스를 잘게 쪼개어 절차를 나누거나 많은 뎁스를 둡니다. 햄버거 메뉴(삼선 모양의 버튼)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눌러봐야 알 수 있고 정작 누르고 나면 그 안에 뭔가 많습니다. 이것이 정말 미니멀한 걸까요? 방에 널브러져 있던 것들을 서랍에 때려 넣어 숨긴다고 그것이 꼭 정리, 정돈되었다 말하기는 힘들다 봅니다.


만약 그것이 국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라거나, 사용자가 단박에 알아차리기 힘든 복잡한 기능을 갖고 있다면 '과연 플랫디자인을 고집하는 것이 올바른가?'를 고민해봐야 할 순간입니다. 플랫디자인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구글은 머티리얼 디자인이라는 걸 만들었고, 디자인 올드비들이 큰 기대를 했던 '뉴모피즘'이 등장했지만 '스큐어모피즘만큼의 친근함을 담고 있는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뉴모피즘에 많은 실망을 했고 '따라가고 싶지 않은 트렌드', '예쁜 쓰레기'라 지칭하고 있습니다. 확신이 없다면 차라리 사용자에게 익숙한 것을 전달하는 게 낫습니다.


도시 재개발을 진행하면서 화려한 뉴시티로 거듭나길 상상했겠지


'서비스 고도화'라는 게 있습니다. 애초 미니멀하게 설계되었던 제품도 이러한 고도화를 거치게 되면 복잡해지거나 어려워집니다. 제가 겪은 국내 개발 환경은 늘 그랬습니다. 서비스 운영하면서 그간 축적된 사용자 데이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클라이언트와 실무자들은 기능 늘리기에만 급급합니다. 뺄 줄을 모르고 더하기만 생각하죠. 그리하면 뭔가 사용자적인 측면에서 더 나은 게 나올 거라 생각하나 봅니다. 도시 재개발을 진행하면서 주변 인프라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지으면 미분양 사태가 일어나거나 심각한 교통 체증을 경험합니다. 실제 입주해도 거주자는 많은 생활 불편을 직면하게 되죠. 난개발입니다.


분명 통계를 바라보면 필요 없는 것과 중요한 것들이 보일 텐데, 그것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있어 보이게 만들어야 하고, 클라이언트에게 나의 디자인이 화려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습니다. 기능도 많아야 하죠. 그러지 못하면 '성의 없음'이란 피드백이 돌아오니까요. 미니멀리즘에서 점점 멀어져 갑니다. 이도저도 아닌게 나옵니다.


이번엔 심플하면서 화려하게 가보면 어떨까요?


'심플하면서 화려하게요.' 디자이너의 관자놀이를 가격해 의식불명의 다다르게 하는 클라이언트의 한 마디이며, 디자인 업계의 7대 난제 중 하나입니다. 이 난제를 풀어낸 자가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점쟁이가 아니니 과거로 돌아갑니다.


아이폰3의 UI, 유튜브 초기 아이콘에 눈길이 간다


돌아간 곳이 결국 스큐어모피즘이네요. 생각나는 게 그뿐입니다. 다른 곳은 가본 적이 없거든요. 애플에서 발사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여는 초탄이며 역사적인 제품인 아이폰. 제 첫 스마트폰이자 가장 좋아하는 제품입니다. 스마트폰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UI/UX를 가장 잘 전달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각각의 아이콘이나 화면 인터페이스 등의 디자인 요소는 직관적이며 화려합니다. 하나하나가 곧 작품이고 지금 보아도 이쁩니다. 아이콘만 봐도 그것이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지 예측이 가능합니다. 실생활에서 보아왔던 익숙하고 친근한 것들이거든요. 반대로 제품 자체와 사용자 플로우는 꽤 심플하게 설계되었습니다. 덕분에 처음 보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전화기'라는 장치의 패러다임이 크게 변화했습니다. '심플하면서 화려한 것' 가능해 보입니다.


저장(Save)의 상징인 플로피 디스켓 아이콘


얼마 전 시안을 잡으며 '저장'버튼에 디스켓 아이콘을 적용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문자 요소가 제외되었을 때 혹은 다국어로 추가 진행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중요하거나 필수 UI 요소에 아이콘 등을 자주 활용하는 편입니다. 내가 만든 UI가 우리가 모르는 외국어로 변경되었을 때 언어의 장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 그것이 잘 설계된 UI라 생각하거든요. 아무튼 시안을 살피다 저장 버튼을 본 기획자 동생이 제게 한마디를 건넵니다.


"형! 요즘 누가 디스켓을 써. 요즘 애들 디스켓 몰라~"

"앗! 그르네! 그럼 이걸 뭘로 바꾸지?"


한참을 고민하다.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디스켓 아이콘으로 진행되었고 그렇게 해당 토픽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걸 요즘 친구들에게 단순하면서 친절하게 어떻게 전달해야 했을까요?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단순하다는 것. 그것이 꼭 생각이 없다거나 공수가 덜 들어가는 작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구체화도 어렵지만 단순화는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사용자를 고려해 친절하기까지 해야 하다니... 무언가를 단순화시키는 과정에서 저는 '초등학생도 되었다가 60세 할머니도 되었다' 하는 빙의현상을 수십 번 경험합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알아볼만한 디자인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가끔은 스큐어모피즘 시절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디자인, 꼭 미니멀해야만 하는 걸까요?


잡스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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