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나라에서 축하를 해준다. 돈 20만 원과 함께.
받는 방법도 금액도 지역마다 다르지만 난 모바일 포인트로 받기 위해 필요한 어플을 새로 깔았다. 새로 설치하고 가입하는 과정이 귀찮지만 20만 원을 준다니, 이 정도 귀찮음을 이기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그러면 '공공상품권'이라는 항목으로 입학준비금이 들어온다. 11월 30일까지 사용해야 한다는 유효기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하루 이틀 만에 다 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난 며칠이 아닌 30분 만에 다 사용했다)
20만 원. 적지 않은 돈이지만 3-4인 가족이 주말 하루 나들이 나가거나 대형마트라도 다녀오면 우습게 나가는 금액이다. 기왕 입학준비금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온 거, 정말 아이의 입학을 잘 준비하는 데에 쓰고 싶었다.
<원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것을 사야 할 때>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 봤다. 기본 필기구나 공책, 색연필 등은 학교에서 입학선물로 받을 예정이고, 필수로 갖고 다녀야 한다는 물병은 유치원 때 쓰던 보온병이 아직 멀쩡해 굳이 새것으로 살 필요가 없었다. 연초부터 쉴 새 없이 광고로 뜨는 초등학생용 책상은 알고 보니 20만 원으로도 사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비싼 책상에 20만 원을 보태자니 너무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역시 초등학교 입학 선물의 기본인 책가방이 답인가 싶었지만 입학준비금은 입학식이 끝나고 나서도 일주일 뒤인 3월 11일부터 사용할 수 있었다. 책가방은 준비금 지급일보다 더 미리 사둬야 했다.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둔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마침 안경을 맞춰야 해서 안경을 구매하거나, 침대나 책상 같은 큰 가구에 보탠 사람들도 있었고, 그동안 눈독 들이고 있던 전집이나 자습서 등으로 서점에서 모두 쓰거나, 위치추적이 가능한 키즈폰이나 워치를 산 맞벌이 가정도 있었다.
아이에게도 넌지시 물어봤다. 분명 필요한 걸 물어봤는데 포켓몬 카드, 보드게임과 같은 원하는 것을 말한다. 역시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을 하며 (그리고 혹시 사줄 거라 기대할까 봐) 얼른 화제를 돌렸다.
<철마다 새로 사야 하는 그것>
아이가 잘 먹고 쑥쑥 크는 것만큼 뿌듯한 건 없지만 그건 매년 새로운 사이즈의 옷과 신발 그리고 속옷, 양말까지 사야 한다는 뜻이다. 깔끔한 셔츠와 멋들어진 청바지도 좋지만 학교 갈 때는 무조건 편한 간편복이 좋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다. 그래서 고민 끝에 운동복 스타일의 편안한 옷 여러 벌을 사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 집 어린이는 옷에 까탈스럽지 않아 주는 대로 입어서 내 취향대로 옷을 고르기에 부담도 없었다.
입학준비금으로 옷을 산 후기들을 찾아보았다. 어느 브랜드가 가성비가 좋은지, 20만 원 내에서 최대한 다양하게 살 수 있는 조합이 있는지, 근처에 갈만한 곳이 어딘지도 함께 찾았다. (그렇다. 내 mbti는 알파벳 J로 끝난다) 마침 찾아봤던 브랜드와 상품들이 모여있는 쇼핑몰이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가장 늦게 하교하는 날을 골라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나의 쇼핑 스타일은 심플하다. 살 것을 미리 정한 후 그것만 사고 나온다. 아이쇼핑은 친구와 같이 있는 게 아닌 이상 혼자서는 거의 하지 않는다. 사지도 않을 거, 살 계획도 없는 걸 구경만 하는 게 시간도 아깝고 살까 말까 고민하는 것도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래서 그날도 쇼핑몰에 도착해 아동복이 있는 층으로 직행해 미리 봐둔 브랜드 매장 세네 곳을 둘러봤다. 매장 계산대마다 친절하게도 ‘입학준비금 사용 가능처’라는 조그만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면 소재 운동복을 위아래 세트로 파는 곳과 심플한 여름용 티셔츠 묶음 그리고 모시소재의 바지가 있는 곳이 내 눈길을 끌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봄부터 더운 여름까지 대비하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 색깔을 고르고 맞는 사이즈를 찾았다. 여름용은 한 뼘 더 자랄 모습과 건조기를 생각하며 한 치수 더 큰 것으로 고른다. 이렇게 나는 양손 가득 아이의 사계절을 담고 집으로 향했다.
<기획육아, 나를 지치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획육아’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육아를 잘 ‘기획’ 하기 위한 모든 것으로 계절과 아이 성장에 맞춰 철마다 입고 신을 것을 사놓고, 식재료를 준비하며 예방접종, 알림장 확인 등 아이의 생활,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해 계획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육아이다. 처음 이 단어를 듣고 내가 왜 육아를 하면서 쉽게 지치는지, 왜 매일 생각하는 것 중 한 두 가지는 꼭 잊거나, 반대로 잊었던 걸 엉뚱한 순간에 떠올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쇼핑몰의 이 매장 저 매장을 돌아다니는 내내, 내 머릿속은 아이의 모습으로 꽉 차있었다. 평소에 어떻게 노는지, 어떤 색깔을 좋아했는지, 어떤 옷이 잘 어울렸었는지. 아이의 다채로운 얼굴과 표정이 떠올랐다 바뀌며 내가 고른 옷을 입고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동안 버겁게 느껴졌던 기획육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초등학교 입학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입학준비를 마무리하며>
끝으로 이 입학준비금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내며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들의 피, 땀, 눈물을 모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이 어린이가 나중에 사회에 나가 최소한 자기 몫은 할 수 있도록 잘 키워내고 싶다. 그리고 몇 년 뒤 혹시 지독한 사춘기가 찾아와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라는 진부한 대사를 내뱉는다면 이 글을 보여주며 넌 절대 혼자 큰 게 아니라고 당당히 말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