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서류 속 지혜로운 책임감

by 마치

예비소집일과 입학식에서 받은 자료를 모아 펼치니 주방 식탁의 반 이상이 채워졌다. 아이가 다니게 될 초등학교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해져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천천히 내뱉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도 꽤 많은 서류에 서명하고 다양한 정보를 적어 냈다고 생각했는데, 초등학교는 달랐다. 학교수업 외에도 방과 후 수업, 늘봄수업, 돌봄 수업 등이 있어 수업마다 적어 내야 하는 관련 동의서와 하교방법, 엄격한 출결규칙 안내서, 새로운 스쿨뱅킹 개설 등 확인하고 선택해야 할 범위도, 가짓수도 늘었다.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한층 무거워진 것 같았다.


두꺼운 종이에 화려하게 꾸며진 팸플릿도 여러 권 들어있다. 교육청에서 배포한 초등학교 입학 생활 안내서부터 학교 자체에서 제작한 학교 소개서까지. 하얀 종이에 까만 글씨만 가득한 서류 속에서 알록달록한 팸플릿이 괜히 반갑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만 글씨가 가득한 종이부터 최대한 꼼꼼히 읽었다. 꽤 오래전에 지나가듯 잠깐 읽었지만 머릿속에 오래 남아 종종 생각나는 기사 제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통신문을 읽지 않는 부모의 문해력“. 나의 부주의로 학교와 아이에게 피해가 가는 실수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엄마라고 낙인찍히기도(?) 싫었다. 하지만 꼼꼼히 읽어본 보람은 다른 곳에서 얻었다. 아이의 학습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온라인 사이트를 알게 됐고, 오래전에 등록한 미아방지 지문등록을 갱신해야 되는 것도 생각났다.


각종 서명과 신상정보를 적고 마지막으로 담임선생님이 직접 써주신 서류를 집어 들었다. 아이의 입학을 기다리며 어떤 분이 담임선생님이 되실까 가장 궁금했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은 아이와 가장 가깝게 지낼, 아이가 제일로 믿고 따라야 하는 어른이었다. 무엇보다도 같은 학년이라도 담임선생님의 성향과 재량에 따라 숙제량부터 쉬는 시간에 노는 방법까지 (교실에서만 놀 수 있는지 운동장에도 나갔다 올 수 있는지) 다 다르다고 들었기 때문에 어떤 분 일지 더욱 궁금했다.


선생님은 네 페이지에 걸쳐 1년 동안 익혀야 할 규칙, 학습 및 활동 계획과 1학년의 행동 특성에 따라 가정에서 부모가 지도해야 할 일이나 대화법도 적어주셨다. 선생님의 꼼꼼함과 전문성에 읽을수록 아직 대화도 나눠보지 못한 선생님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선생님의 교실에서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 그리고 넷째는 예절이라고 한다. 나도 격하게 동의하며 기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장은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진솔하게 써주신 편지였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셨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을 대하는지, 아이를 학교에 맡기는 부모로서 학교와 선생님들께 어떤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는지, 선생님의 진심과 정성이 묻어나는 편지였다.


초등학교 서류를 모아두려고 꺼내온 바인더의 맨 앞장에 선생님의 편지를 끼워 넣었다. 기한 내 동의서를 제출하고 결제일 전에 미리 스쿨뱅킹 계좌를 확인하는 학부모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등굣길에 교통안전지도 선생님께 인사하고, 아픈 친구를 보건실까지 데려다주는 아이를 기르는 지혜로운 학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정리한 서류를 아이에게 건네며 이제 정말 초등학생이라는 실감이 났다. 새로 산 책가방에 서류를 넣는 아이를 보니 앞으로 아이 눈앞에 펼쳐질 새로운 세상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채워졌다. 즐겁고 아름다운 세상만 볼 순 없지만 아이가 어떤 모습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길, 나도 지혜로운 책임감을 갖고 본격적인 학부모 생활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