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을 며칠 앞둔 날부터 제 몸만 한 책가방을 매고 학교로 걸어 들어갈 아이를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가도 금세 온갖 걱정들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뛰어놀기보다는 앉아서 사부작 거리는 걸 좋아하고, 먼저 말 걸기보다는 관심 있는 사람 옆에 다가가 말없이 기다리는 아이라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새로운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서점에 가니 입학 시즌에 걸맞게 초등학교 입학 관련 책들이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줄 맞춰 전시되어 있었다. 너도나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이것만은 꼭 알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듯했다.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목차부터 훑어보기 시작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맞는 말들이었지만 모두 다 실천하기엔 종류도 많고 시간도 촉박했다. 이걸 아이에게 어떻게 다 전달하고 기억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됐다.
직설적으로, 명확하고 정확한 지시로 키워야 한다는 남자아이 육아의 특성이 떠올라 내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에 대해 간단하게 써서 집 거실에 붙여 놓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의 초등학생 10 계명이 만들어졌다.
1. 인사 꼭 하기
2. 도움이 필요할 땐 도와 달라하기
3. 혼자 다니지 않기
4. 불편할 땐 불편하다고 말하기
아이는 학교로 가는 길에서부터 인사할 일이 많다. 털모자와 두꺼운 겨울 신발로 온몸을 무장하고 건널목 앞에서 교통지도 봉사를 해주시는 마을의 어르신들부터 교문 앞에서 열심히 외운 아이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며 인사해 주시는 보안관 선생님들, 등하굣길에 마주치는 친구들 그리고 담임선생님까지. 인사만 잘해도 좋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숫기는 없어도 인사는 잘하는 아이가 됐으면 했다.
스스로 시도하고 도전해 보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도움이 필요할 땐 도와 달라고 말하는 용기도 중요하다. 1학년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등교한 아이는 학교 신발장에 자기 실내화가 아닌 낯선 신발이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 누군가 실수로 자기 실내화로 갈아 신고 간 거라 생각했지만 실내화를 찾으러 교실에 가자니 신을 실내화가 없고, 집에서부터 신고 온 신발을 신고 교실로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 갈팡질팡 했다고 한다. 그때 마침 등교한 같은 반 친구가 신발장으로 다가와 아이는 그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교실의 선생님께 말 좀 전해달라고 했다. 친구는 아이 손을 잡고 교실로 데려가 선생님, 친구들과 같이 실내화를 무사히 찾았다고 한다. 훈훈하게 마무리된 이 이야기에서 아이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친구에게 고마웠고 도움을 요청한 아이도 기특했다. 도움을 구하는 용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1학년 아이들이 혼자 다니지 않도록 이동하는 동선마다 선생님을 붙여주었다. 늘봄 선생님들이 교실로 아이들을 데리러 오고, 방과 후 수업이 끝나면 해당 선생님이 아이를 교문 앞까지 데려다주신다. 교문에서는 자연스럽게 보안관 선생님께 인계되어 보안관 선생님은 어떤 아이가 보호자를 기다려야 하는지, 어떤 학원 차를 타야 하는지 모두 꿰뚫고 계신다. 이런 모두의 배려 덕분에 혼자 다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이도 학교를 다니며 몸소 깨우쳤다. 교실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때에도 항상 짝꿍과 함께 보건실로 가야 한다고 나중에 아이를 통해 전해 듣기도 했다.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아이는 주말이 싫어질 만큼 교실에서 친구들과 노는 걸 재밌어했다. 하지만 어디에나 나와 다른 사람, 맞지 않는 사람은 있다는 법을 깨닫기엔 초등학생 1학년은 아직 어렸다. 1학기가 반 정도 지났을 무렵, 아이는 자신보다 좀 더 활발하고 행동이 큰 친구와 충돌이 잦은 것 같았다. 온전히 아이의 말로만 전해 듣는 이야기라 100% 사실만 이야기한 건지 알 수 없었고, 또 얘기를 들어보면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여쭤볼 만큼 큰 일도 아닌 듯싶었다. 아이가 스스로 대처하길 바라며 불편하게 하는 친구에게는 불편하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그래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그땐 선생님께 도움을 구하라고 말했다. 같은 반에 10명의 친구들이 있다면 10개의 성격이 있는 거라고 덧붙여 얘기했는데 이건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아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5. 소변볼 땐 뒤에서 엉덩이가 보이지 않도록 하기
6. 비누로 손 씻기
7. 아무 데서나 코 파지 않기
5번은 여자인 나는 미처 몰랐던 부분이었다. 집에서 항상 급하게 바지를 훌렁 내리고 볼일을 보는 아이의 모습에 익숙해서 바지 앞부분만 내리고 소변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앞부분만 내렸다고 해서 보면 뒤에 동그란 복숭아 두 개도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귀여웠지만 이건 엄마인 나에게만 귀여운 모습이다. 시도를 거듭하며 여기저기에 튀고 묻어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일주일 정도 연습하니 더 이상 복숭아는 보이지 않았다.
항상 무언가에 집중하면서 참고 참다 화장실을 가는 아이라서 아이는 소변을 보면서도 빨리 집중하던 놀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있다. 그렇다 보니 내가 안 볼 때는 손에 물만 묻히고 나오기 바쁘다. 학교에서도 분명 이런 모습을 보일 것 같아 비누로 손 씻기도 십계명에 꼭 넣고 싶었다. 가끔 불시에 비누 모양이나 색깔, 냄새 등을 물어보는데 곧잘 대답하곤 한다.
비염이 있는 아이는 가을 환절기부터 이른 봄의 꽃샘추위가 올 때까지 자주 코를 훌쩍거리고 건조함에 불편해한다. 특히 겨울에는 건조해진 콧 속이 가려워 시도 때도 없이 코를 파는데 유치원 때부터 이어진 습관이라 아이도 이미 코 파지 말라는 잔소리는 들은 지 오래다.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 형님'이 됐다는 핑계(?)로 습관이 고쳐지길 바라며 십계명에 넣었다. 그리고 십계명 중, 1학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제일 지키기 어려운 항목이 돼버렸다.
8. 학교 다녀오면 책가방 풀고, 자기 전에 책가방 싸놓기
9. 숙제는 선생님, 같은 반 친구들과의 약속
10. 양치시간, 잠드는 시간, 기상 시간 잘 지키기
무엇보다도 엄마로서 가장 바란 점은 내일을 기대하는 초등학생이 되었으면 했다. 내일을 기대하려면 책가방을 싸고 숙제를 끝내 내일을 맞을 준비가 다 되어 마음에 걸리는 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생활습관 잡기를 중요시했다. 신발장에서 가까운 곳에 가방을 놓을 수 있는 트레이를 놓고, 위클리 수첩을 사다가 매일 해야 할 일을 적어 다 한 일에는 체크 표시를 하게 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양치 알람이 울리면 양치를 하고 책을 몇 권 골라와 침대에서 같이 읽고 잠이 든다.
처음에는 이제 이거 해야 할 차례라고 일일이 알려줬지만, 지금은 체크표시 하는 재미와 친구들과 놀 생각에 (숙제를 집에서 안 하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쉬는 시간에 숙제를 해야 한다) 스스로 할 일을 끝내 놓는다. 가끔 받아쓰기 시험 연습이나 영어 숙제에 투정을 부릴 때도 있지만 이만큼 잘 따라와 준 아이에게 고마움이 더 크다.
내 딴에는 초등학교 학부모로서 준비한다고 10 계명까지 써붙여 놓았지만 아이가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 건 내 노력보다는 아이 스스로 터득한 점이 많다는 걸 입학 후 1년이 지나고 나니 깨닫는다. 나는 옆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말만 했지 정작 학교 안에서 아이는 엄마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 친구들을 사귀고 선생님과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갔다. 앞으로 아이에 대한 걱정과 우려는 절대 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지만 아이는 의외로 강하다는 걸, 생각보다 잘 헤쳐나간다는 걸, 언제나 아이만의 생각과 세계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