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1학년에게 매운 음식이란

by 마치

아이의 초등학교 첫 학기, 첫 3월의 식단표를 받아본 날, 학교생활에 대한 새로운 걱정이 추가됐다. 영양사 선생님의 믿음직스러운 식단표의 메인메뉴는 초등학교 1학년의 기준에서는 대부분 매운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나물이나 감자볶음 같은 반찬이 나오는 날의 국은 김치찌개나 육개장, 심지어 마라탕이 나오는 날도 있었고, 심심한 콩나물국이나 콩비지에는 고추장 불고기, 칠리새우, 닭볶음탕 등이 메인요리로 나왔다. 내가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조화로운, 나도 아이들 사이에 껴서 먹고 싶은 한 끼지만 씻어 먹는 김치도 거부하는 아이에게는 그저 빨간 매운 음식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배고픈 배를 움켜쥐고 오후 수업을 듣지 않으려면 일단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해 보는 노력은 해봐야 했다.


한국인이 가장 참지 못하는 것이라면 아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빨간 국물에 꼬불꼬불 탱글한 면에서 풍겨오는 라면 냄새일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비주얼과 향기(?)로 이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 —몸에 건강한 음식은 아니지만— 아이의 매운맛에 대한 허들을 일단 라면으로 낮춰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후추맛 때문에 하얀 국물의 라면도 거부하던 아이는 어느 추운 겨울 눈 놀이 후 맛본 튀김우동 컵라면을 이내 코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 이어서 진라면 순한 맛도 도전해 보았지만 초등학교 2학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아직 성공하진 못했다.

이제는 즐기면서 먹는 라면과 학교 급식

그러다 의외의 계기로 아이의 도전을 자극하는 일이 있었다. EBS를 보다 나온 한 떡볶이 광고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아이는 광고에 나온 떡볶이를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빨간 소스에 어묵과 조화롭게 버무려진 떡은 여느 보통 떡볶이와 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먹기 전에 떡볶이에 묻혀 먹는 별 모양의 토핑이 이 떡볶이의 특징이었다. 흡사 건빵의 친구 별사탕과 비슷하게 생겨서 귀엽고 시리얼처럼 바삭한 식감이 돋보였다. 아이도 이 특이한 모습에 끌렸는지 매운맛일걸 뻔히 알면서도 먹고 싶어 했다.


배달 주문한 떡볶이가 도착하고 식탁에 펼쳐 빨간 떡을 집어 토핑에 찍어 보았다. 작고 노란 별이 붙은 빨간 떡은 마치 외계인이 사는 매운 행성 같았다. 아이를 위해 하얀 우유로 가득 채운 컵과 생수가 담긴 밥그릇을 준비했다. 아이는 기대와 설렘 그리고 긴장이 뒤섞인 표정을 하고 생수에 씻은 떡을 별 토핑에 깊숙이 넣었다 뺐다. 내가 먹었던 매운 행성은 순식간에 뽀얀 우유 행성이 됐다. 아이의 오물오물 씹는 입을 보며 반응을 살폈다. 몇 번을 더 곱씹으며 먹더니 아무 말 없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안도감이 들었다. 반 이상의 떡이 사라졌을 때 우유의 양도 반 정도 줄어 있었다. 처음 먹은 빨간 떡볶이치곤 꽤 많이 먹은 셈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하교 후 집으로 나란히 걸어오며 아이가 말했다. 오늘 김치를 두 개나 먹고 빨간 오징어도 한 번 먹어봤다고. (나중에 식단표에서 확인한 정확한 이름은 ‘고추장 진미채’였다)


이렇게 나날이 새롭게 시도하는 것들이 늘어나고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큰다. 언젠가 제발 마라탕 좀 그만 먹으라고 하소연할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매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해 본 아이가 대견스럽다. 앞으로 아이에게 닥칠 다른 ‘매운’ 것들도 이렇게 헤쳐나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