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형들 사이에 낀 1학년

by 마치

나에게 학교에서의 시간은 ‘교시’로 구분되었다. 4교시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6교시까지 하는 날은 집에 가장 늦게 돌아가고, 가끔 학교 행사로 2교시까지만 수업하는 날은 괜히 아침부터 방학식 하는 날처럼 마음이 붕 떠있었다.

하지만 요즘 초등학교는 교시로 구분되는 정규 수업뿐만 아니라 저학년에게 다양한 놀이학습을 제공하는 늘봄수업 (2026년 기준, 맞춤형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사교육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과후수업, 맞벌이 부모를 위한 돌봄 수업도 있다. 이렇다 보니 같은 학년, 같은 반이라도 각자 천차만별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였고, 수업이 끝나 교문 밖을 나갔다가 다시 다른 수업을 들으러 학교로 돌아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처음 방과후수업을 신청할 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였다. 정규 수업과 늘봄수업 그리고 7살부터 다녔던 바둑 학원 수업 사이의 빈 공간을 방과후수업으로 채워야 하는데 아이의 취향, 나의 욕심 그리고 고정된 수업시간이 뒤엉켜 빈 시간을 딱 맞춰 채우도록 시간표를 짜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생 시절 공강과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시간표를 짜고 수강 신청시간에 맞춰 열심히 마우스를 클릭하던 때가 있었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시간표 테트리스를 또 해야 하다니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첫 2주간의 적응기간이 끝나고 나름 야심 차게 짠 시간표대로 방과후수업이 개강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유독 힘없이 하교하는 아이를 보고 오늘 어땠는지 물었지만 ‘몰라’, ’ 기억안나‘ 라는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따라 피곤한가 보다 생각하며 같이 집으로 돌아가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이가 옆으로 오더니 오늘 속상한 일이 있었다며 입을 뗐다.


영어시간에 3학년 형 두 명이 엉뚱하고 우스운 말로 놀린 것이다. 아이는 하지 말라고 하다가 선생님께도 알렸지만 잠깐 잠잠해졌을 뿐, 다시 놀리기 시작해 아이는 무서워서 의자 뒤에 숨었다고 했다. 처음엔 어떤 속상한 일일까 하고 되물으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의자 뒤에 숨은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이런 게 억장이 무너지는 건가 싶을 정도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방과후수업은 다른 학년과 섞어서 수업 듣는다는 것을 (수강신청할 때 눈으로는 읽었지만 이제야 실감 나게) 깨달았다.


그리고 몇 주 뒤, 새로운 ‘사건’이 생겼다. 수업이 끝나고 교문으로 걸어 나오던 아이 뒤로 2학년 형이 따라왔다.

“너 좀 전에 내 발 밟았지? 근데 왜 미안하다고 안 해?!”

당황한 아이는 안 밟았다고 대답했지만 2학년 형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땅을 향해 카메라 렌즈를 놓고 동영상 촬영버튼을 눌렀다. 두 아이의 신발이 작은 화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밟았잖아!”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녹음되고 있었다.

”나한테 누명 씌우지 마!“

당황하던 아이가 참다못해 외친 말이었다. 그때 근처에 있던 보안관 선생님이 재빠르게 중재에 나서 상황은 끝나고 2학년 형은 집으로 유유히 사라졌지만 아이는 꽤 억울했는지 아무것도 모른채 학교 정문으로 다가오는 나를 보자마자 방금 있었던 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이런 거야라는 식의 명백하고 깔끔한 결론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정말로 아이가 신발을 밟은 건지 아니면 억울하게 오해를 받은 건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 뜨뜻미지근한 공감정도만 할 수 있었다. 여차할 땐 핸드폰을 꺼내 ‘증거’를 남기라고 교육받았을 아이를 생각하며 씁쓸했던 한편, 평소 부끄러움도 많이 타고 목소리도 작은 아이가 누명 씌우지 말라며 큰 소리로 말했다니 의외의 모습에 속으로 놀랐다.


영어시간에 엉뚱한 말로 아이를 놀린 형들은 나중에 알고 보니 또래 사이에서도 우렁찬 목소리와 큰 덩치로 대장 노릇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다르게 말하면 리더십이 있고 쾌활한 성격이라 따르는 친구들도 많은 것 같았다. 다행히 그날 이후 아이는 더 이상 속상한 일은 없었다고 했고 나중에는 그 형들과 쉬는 시간에 간식도 나눠먹고 서로 엉뚱한 수수께끼를 내며 놀았다고 즐거워했다. 곤란한 상황에 핸드폰부터 들이밀며 영상을 찍던 아이는 그 후로 다시 못 만났지만 앞으로 사과할 일은 바로 사과하고, 억울한 일은 차분하게 설명하고, 그래도 곤란할 땐 주변 어른들께 도움을 요청하라고 일러두었다.


아직 1학년 1분기가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이에겐 벌써 거친 사회생활의 첫 문이 열린듯했다. 초등학교에서는 웬만한 문제에는 선생님이 바로 개입하기보다는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처음에는 지켜보는 편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갈 때 30만큼의 변화가 있었다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올라갈 때 느낀 것은 60-70의 급격한 변화였다. 그만큼 아이에겐 변화를 받아들이는 적응력이, 부모는 변화에 반응하는 정도를 조절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앞서 겪은 작은 사건들을 통해 깨달았다.


형, 누나들이 쓰는 말투를 듣고 한 번 따라 해보고, 유행하는 핸드폰 게임을 옆에서 슬쩍 구경도 해보고, 대화를 엿들으며 초등학교 생활은 이런 것이구나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부모 없이 겪는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속상하고 상처받을 일이 앞으로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때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아이에게 자주 말해주는 것이 생겼다. 세상에 10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성격 또한 10가지가 있는 거고, 그 10명과 모두 잘 지낼 필요는 없다고. 40대를 바라보는 엄마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