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싫지만 시험은 백점 받고 싶어

by 마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손 씻고 가방 풀기이다. 현관 앞에 자리 잡은 트레이 위에 가방을 놓고 손을 씻고 온다. 가방을 열어 물통을 꺼내고 그날 학교에서 만든 귀중한 잡동사니들을 늘어놓으며 자랑한다.


어떤 그림을 그렸으며, 이건 누구랑 만들었고, 저걸 만드는데 누가 어떤 방해를 해서 속상했다는 얘기를 왠지 신나게 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교실에서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필통은 하루가 다르게 때가 타며 본연의 모습을 잃어 낡아 보이지만 연필이 짧아지는 만큼 아이의 세상은 길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1학년 시작 몇 주만에 지쳐보이는 학용품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선생님께 새로운 종이를 받아왔다며 나에게 다른 것보다 유난히 빳빳한 종이를 내밀었다. 급수별(수준별)로 분류된 듣고 적기 리스트였다. 듣고 적기라는 말이 순간 어색했지만 곧 받아쓰기와 같은 말임을 깨달았다.


아이의 알림장에는 ‘듣고 적기 O급 연습하기. 매주 목요일 시험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초등학생의 첫 시험이었다.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 시험 보는 급수의 문장 10개를 같이 읽은 후, 시험 보듯이 아이에게 듣고 적어보게 했다. 결과는 (당연히) 엉망이었다. 보고 읽을 땐 다 아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직 내 기억에만 의지한 채 백지 위에 쓰는 건 다르다는 것을 아이는 알았을 것이다.


나름 열심히 썼는데, 분명 방금 읽고 본 글자였는데, 엄마의 색연필이 찾아내는 틀린 글자가 늘어날 때마다 아이는 금방 흥미를 잃었다. 입꼬리가 슬쩍슬쩍 내려가며 입은 삐죽 나오기 시작하고 손에 단단히 잡혀있던 연필은 힘없이 흐느적거렸다. 영유아기 때부터 겪은 다채로운 상황에서 내가 배운 것은 이때 부모도 참지 못하고 버럭 화내는 것은 모든 것을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훌쩍거리는 아이옆으로 다가가 억지로 잡은 연필을 빼 연습장위에 올려놓자 아이가 말했다.

“난 다 동그라미 받고 싶어. 틀리기 싫단 말이야. “

”맞아. 다 동그라미 돼서 백점 받으면 기분 엄청 좋지. 그런데 우리는 오늘 처음 해보는 거잖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있어! 난 처음부터 잘하고 싶어.”

“그런 건 없어. 포켓몬 마스터가 꿈인 지우도 포켓몬리그에서 어떻게 1등 됐어? 바로 됐어? 아니지. 매일 운동하고 포켓몬학교도 다니면서 배틀 연습했잖아. “

아이를 위해 억지로 봤던 만화영화가 이렇게 활용될 줄은 몰랐지만 효과는 좋았다. 아직 1학년이라 먹히는 방법이겠지만 포켓몬이라는 단어를 들은 아이의 입꼬리는 다시 원래 자리를 찾았다.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반응이 귀여워서 내 입꼬리가 올라갈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우리가 지금 하는 건 연습이고, 연습할 때 틀린 것들을 발견해야 시험에서 안 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치러야 할 시험들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연습의 힘을 아이 스스로 깨닫는 것이었다.

연습장과 시험지

그 후 몇 번의 연습을 더 하고 시험을 보고 온 날, 아이는 한 개 틀린 시험지를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아이를 꼭 안아주며 지난 며칠간 참고 연습한 덕분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9점짜리 시험지는 그동안 연습한 종이와 함께 아이 방 문에 붙여놓았다. 방을 지날 때마다 시험지보다 연습한 흔적을 보고 더 뿌듯해했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종이를 붙인 테이프를 다시 한번 꾹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