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주간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

by 마치

옷장을 열어 가장 깔끔해 보이는 옷 몇 벌을 골라 꺼냈다. 아이의 등하교를 함께 하고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동네 근처에서 볼 일을 볼 때 입는 통이 크고 펄럭이는 바지가 아닌 옷을 입는 건 오랜만이었다. 베이지색 면바지 옆에 곧게 걸려있는 치마는 마지막으로 입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한때 매일 같이 입고 다녔던 매끈한 치마들이 이제는 남의 옷처럼 낯설어 보였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벚꽃이 흩날리는 4월까지도 얇은 옷 여러 개를 겹쳐 입는다. 그래서 얇은 바지를 겹쳐 입기 힘든 면바지 입는 날은 겨울에는 물론이고 봄까지도 손에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바지를 꺼내고, 패팅대신 코트를 집어 들었다. 초등학교 첫 학부모 상담일이었다.


학부모 상담 주간에 대한 공지는 질문 몇 가지가 적힌 별첨 종이와 함께 아이를 통해 전달되었다.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체크하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적어 일주일 내로 다시 아이를 통해 선생님께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질문은 A4용지에 같은 간격으로 4가지 질문이 적혀 있었다. 시험지 제일 뒷장에 있는, 가장 어렵기 때문에 배분된 점수도 가장 높은 주관식 문제지 같았다.


아이 성격의 장점과 단점은? 아이가 가장 즐거워하는 일은? 아이에 대해 당부하거나 학교에 바라는 점은?


특별한 점이 없다면 아예 학부모 상담은 진행하지 않고 수시 상담으로만 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질문을 읽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갖고 가르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난 노트북을 켜고 질문의 답을 생각나는 대로 키보드에 쳤다. 대답을 줄이고 줄여서 종이에는 요점만, 오타 없이 옮겨 적을 생각이었다. 질문을 읽으니 영유아 시절부터의 아이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훑고 갔다. 항상 1등으로 등원한 어린이집에 적응한 과정, 입을 내밀며 그림 그리기에 집중하는 모습, 유치원 발표회에서 긴장하던 얼굴 그리고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자 보드게임 판을 뒤엎던 ‘금쪽이’ 같은 최근 모습까지.


나를 웃게 하기도 걱정스럽게 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건강하고 무난하게 컸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아이의 장단점을 쓰고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와 동물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일 년 동안 잘 부탁드린다며 마무리했다. 다 쓰고 나니 A4용지 한 장이 가득 찼다. 노트북에 초고(?)까지 써가며 요약해 옮겨 적었는데, 빼곡한 글씨가 너무 유난 떠는 엄마처럼 보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1학년 교실이 있는 건물을 찾아 들어가니 제일 먼저 신발장이 눈에 띄어 자동적으로 아이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네모난 칸 안에 가지런히 들어 있는 실내화에서 내가 썼던 이름 세 글자가 눈에 띄었다. 매일 여기서 신발을 갈아 신겠구나 생각하며 교실 앞으로 가자 아직 내 앞 순서의 상담이 진행 중이었다.


선생님의 목소리와 중간중간 걱정 섞인 목소리로 맞장구를 치는 맞은편 학부모의 목소리가 교실 밖으로 어렴풋이 새어 나왔다. 이제 곧 내 차례다. 취업 면접 보듯이, 그동안 엄마로서의 역할을 평가받는 자리인 것처럼 긴장감이 몰려왔다.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나고 앞 순서의 학부모가 나왔다. 내가 들어가니 선생님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맞아 주셨다. 그리고 곧바로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줍음이 많은 친구인 줄 알았는데 친구들을 사귀면서 점차 활발해지고 지금은 까불이가 됐다며 웃으셨다. 선생님은 아이는 적응도 잘하고 있고 집중력도 좋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며 상담을 마무리했다.

 

내가 A4용지에 가득 썼던 내용에 대해 말할 줄 알고 교실에 들어가기 전 내 답변을 한번 더 읽어보기까지 했는데 내 답변에 대한 얘기는커녕 난 몇 문장 말하지도 못한 채 일어나야 했다. 선생님께 이것 만은 꼭 얘기해야 한다는 건 없었지만 그냥 선생님 얘기만 듣고 온 것 같아 왠지 모를 찝찝한 마음이 남았다. 내가 몇 시간 동안 힘들게 한 요리를 손님이 10분 만에 다 먹고 맛있었다며 급하게 자리를 떠, 나 혼자 주방에 덩그러니 남은 기분이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한 초등학교 교사가 쓴 짧은 글을 읽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교단에 서면 보통 1-2주 내에 아이들의 성격과 특징, 부모님의 성향까지도 웬만하면 다 파악된다고 한다. 특출 나게 천재적인 면이 있다던가 심각한 생활 습관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선생님은 학부모에게 잘 연락하지 않는다고, 무소식이 곧 희소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학교 선생님께 아이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듣지 못했다면 지금 하던 대로 잘 키우면 된다고 했다.


나는 우연히 마주친 이 글로 학부모 상담에 대한 내 아쉬움과 찝찝함을 지워버렸다. 선생님도 나도 서로 연락할 일 없이 일 년을 보내는 게 가장 좋은 일 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이젠 깨달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마음가짐, 나중에 아이를 독립시킬 때 가져야 할 생각이라고 여겼는데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지금부터 필요한 마음가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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