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은 학교 혼자 가볼래.”

by 마치

집에서 차로 20분은 가야 했던 꽤 먼 거리의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3학년때부터 스쿨버스대신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학교에 거의 다 와갔을 때 내려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거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내린 곳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갔다. 사람 한 명과 오토바이 한 대 정도가 겨우 지나갈만한 길이었지만 바쁜 아침에 두 정거장쯤은 버스를 갈아타는 것보다 걸어가는 게 빨랐다.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에서도 잠깐 놀고, 떡볶이도 먹고, 학교 근처에 사는 친구집도 들렀다가 알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지금의 초등학생 3학년에겐 상상도 못 할 일이 돼버렸다. 아이 옆으로 쌩쌩 지나갈 위험한 오토바이가 생각나고, 좁은 골목길에서 이상한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하교 후 핸드폰 없는 아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도 불안하다. 학교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기 초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하교 방법을 각각 써서 학교에 제출해야 하고, 아이를 인계받는 보호자나 학원 관계자가 오지 않으면 선생님은 아이를 혼자 교문 앞에 둘 수 없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삶의 질은 크게 성장했지만 그만큼 약자를 향한 범죄와 책임의 무게도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날, 아이가 아침밥을 먹다 말고 대뜸 말했다. “나 오늘은 학교 혼자 가볼래.”


사실 며칠 전부터 낌새는 눈치채고 있었다. 아침마다 같이 손을 잡고 등굣길을 걸어가며 오늘 쉬는 시간에는 뭐 하고 놀건지, 급식 메뉴는 어떤 게 나오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게 큰 낙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걷다가 아는 친구를 만나거나 교문에 다와 가면 잡던 손을 슬그머니 놓기 시작했다. 허전해진 손을 멍하게 바라보다 아이 얼굴을 흘끗 보니 아이는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 않은 척, 모르는 척을 하고 있다. “손은 왜 놨어, 다시 잡자,”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면 아이는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아이의 웃음이 처음으로 낯설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며 잘 크고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섭섭한 마음을 애써 눌렀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학교라 좁은 골목길은 없지만 건널목을 한 번 건너야 했다. 중간중간에 신호가 없는 건널목도 있지만 항상, 반드시, 신호가 있는 건널목에서 건너도록 신신당부를 했다. 건널목에는 교통봉사를 해주시는 분들뿐만 아니라 1교시가 시작할 때까지 학교 주변을 돌며 등교하는 아이들을 지도해 주시는 교감선생님도 계신다. 위험할 것도 걱정할만한 것도 크게 없는데 실체 없는 근심이 머릿속을 가득 매웠다.


내가 부엌 정리를 하는 동안 아이는 벌써 신발까지 다 신고 현관에 서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외치더니 그대로 뒤돌아 나가버린다. 나는 눈으로 아이 뒷모습을 좇으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갔다. 무서워서 엘리베이터는 혼자서 못 타겠다던 아이는 이제 없었다.


그날 하교한 아이를 만나자마자 물었다.

“아침에 학교 가는 길 어땠어? 별일 없었어? “
”응. 잘 갔어. “
”가다가 아는 친구는 안 만났고? 건널목 건널 때 어려운 건 없었어? “
”아는 친구 없었어. 가다가 교감선생님이랑 하이파이브했어. “
”씩씩하게 잘 갔구나. 멋지네. 내일도 혼자 갈 거야? “
”응. 혼자 갈 거야. 재밌어. “

아직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안아달라고 한다. 아이가 클수록 무거워서 안아주는 게 힘들지만 혼자 등교하기 시작한 아이를 보며 앞으로 허리운동을 꾸준히 하면서라도 아이를 자주 안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음껏 안을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