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드라마 '로젤'

by 마침내


로젤, 그녀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건조한 20대가 시작된 어느 날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 그날은 독특한 형태로 기억된다. 컴컴한 객석에 앉아 있는 한 사람과 무대 위에 있는 한 사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 그리고 객석에 앉아 있는 한 사람도 '나'다. 로젤을 생각하면 언제나 내 머릿속은 환 장의 사진을 보듯 그렇게 기억이 된다.


20대에 만난 로젤은 강렬했다. 1인극이 주는 이미지도 로젤의 이야기도 모두 충격이었다. 이후 배우 김지숙 님의 로젤 공연 소식이 들리면 내 발걸음은 홀린 듯 극장으로 향하곤 했다. 내가 살던 20대와 30대에 종종 그녀를 만났다. 나는 그녀를 응원하는 한 사람이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였고, 배우 김지숙 님의 팬으로 극장을 찾아다녔다.


인생의 전환점이던 40대가 되어서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내 관심은 먹고사는 일에 더 치우쳤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인생의 변화를 꿈꾸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50대의 중년이 된 지금 다시 그녀가 찾아왔다.






김지숙 님의 '로젤' 마지막 공연 소식이 들렸다. 잊고 지낸 그녀가 생각났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오랜만이다, 얘' 그녀는 언제나처럼 담담한 듯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조금은 남 이야기하듯 천천히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할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로젤을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요즘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우습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다. 그 시간을 로젤도 함께 겪어내며 잘 살아냈겠지. 그녀의 그간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었다.






'내 꿈은 그냥 바이올리니스트였을 뿐인데...'

그녀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 시대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녀는 음악을 좋아하는 소녀였고,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이었을 뿐이다. 꿈이 틀어진 이후 그녀는 외로웠을 뿐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잘 몰랐을 뿐이다.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서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했을 뿐이다. 그녀는 남을 헤지지도 않았고 매 순간 살기 위한 선택만 했을 뿐이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든 아무도 그녀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의 시대에서 망가지고 버텨내며 살았던 여성. 지금은 뭐가 좀 바뀌었을까?

시간이 지나고 강산이 변하는 동안에도 잔인함과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고, 더 깊은 어둠으로 숨었을 뿐이다. 보이기 위한 장식은 더 화려해졌으나 그 속에 있는 우리는 더 초라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꿈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지만 이게 맞다 저게 맞다 수도 없이 많은 방법과 생각들이 넘치게 돌아다니는 이 시대.

나는 무엇을 목적으로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가. 쉰 살이 넘어 다시 만난 로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삶의 질문을 내게 쏟아내고 있다.





Screenshot_2025-10-02_at_10.16.17.jpeg 이 이미지는 로젤 소개글에 있는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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