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끝자락, 차분하게 마음 정돈하기 좋은 필사 시

by 마침내

푸른 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2026년 새해를 이야기하고, 설날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2월도 사라지고 있다.

느닷없이 다가와 불현듯 사라지는 마음처럼

시간은 그리고 또 계절은 어딘가로 소멸되었다.


시집 『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요』에는 '나희덕. 젊은 날의 시'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누구에게는 뜨거웠던 날이 누구에게는 차가운 시간이었던 우리 모두의 젊은 날.


이 시집을 읽으면 뜨겁고 차가웠던 사라진 내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 끓고 있는 내 마음도 조금 식히게 되고 반대로 식어가는 열정을 다시 소생시키게 된다.


그중 푸른 밤은 소생을 담당하는 시다.

잔잔한 이 시가 나를 다시 꿈틀거리게 하고 다시 쓰게 하고 다시 읽게 한다.


한 줄 한 줄 허투루 쓰인 문장이 없다.

이토록 모든 문장이 핀에 꽂히는 시도 드물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니 마음은 어디에 있니?' 하루에도 몇 번씩 끄집어내는 생각. 언제나 들락날락하는 마음만 볼뿐이었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이 시의 마지막은 개인마다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많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끝을 보는 듯한 마지막은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피해 내 마음을 보러 가기 위한 시간이었다. 빠르게 가려고 지름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굽은 길이라도 직접 경험하고 느끼며 힘들더라도 천천히 내 삶을 살았다. 또 그렇게 살고 있어도 괜찮다는 토닥거림 같다.


나희덕 시인은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백석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 많은 유명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반통의 물』 『예술의 주름들』 등이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계절이 바뀌기 시작하는 2월 끝자락에서 나희덕의 푸른 밤을 필사한다. 그리고 행간에 머물며 '지금'을 들여다본다.


길을 잃어도 괜찮고 벼랑 끝에 서도 괜찮으니 놓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를 새겨본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겨울 별, 오리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