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나는 오감을 동원해 장소를 받아들이고 살아내야 하는 공간에 있으므로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즐거운 일을 만들면 막막하고 아찔해도 행복할 수 있다. 사막에 떨궈도 알아서 살고 있을 거라고 했던 어릴 적 친구들은 진작 나의 이런 부분을 봤던 것일까.
번쩍, 반짝하며 번개가 쳤다. 큰 빛과 작은 빛이 번갈아 나타났다가 사라지더니 곧이어 야무진 소리가 났다. 번개 맞는 소리는 의외로 짧고 명확하다. 천둥의 크고 요란한 소리 뒤에 '딱'하는 소리 한 번이면 된다. 단순하지만 충격은 확실하다. 한 번의 짧은소리로 모든 업무가 중단되었다. 벌써 세 번째다.
천둥과 번개를 몰고 비가 오는 날은 무조건 모든 코드를 뽑는다. 하지만 번개는 언제나 틈을 찾아 타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인터넷 랜선을 따라 들어왔다. 찰나의 순간에 컴퓨터, 인터넷, 프린트, 팩스까지 동시에 운명을 달리했다. 두꺼비집의 콘센트가 떨어져 아이스크림 냉장고의 전원도 꺼졌다. 아이스크림이 황태도 아니고 과메기도 아닌데 장마철마다 열심히 얼었다 녹았다 반복 중이다.
1년 사이에 사무기기 세 번을 바꾸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산에서는 아무렇지 않다. 사진에서나 보던 번개모양이 바로 눈앞에서 찰칵하며 찍혔다 소멸되는 모습을 보는 일도 그런가 보다 한다. 쉽게 경험하지 못할 일을 자주 겪으며 담담하게 살아내는 이곳은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가장 가깝게 만나는 공간이다.
처음 천둥과 번개를 만난 날은 공포였다. 밤새 두려움이라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밤을 꼬박 새웠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천둥소리는 화산이 폭발하는 소리와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온 산이 무너져 내 방을 덮칠 것 같았다. 깜깜한 방 안이 환해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눈을 감아도 그 잔영이 분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번쩍였고 반짝했다.
첫 경험은 다음을 익숙하게 한다. 빗소리보다 천둥소리가 요란했지만 처음처럼 심장이 뛰지는 않았다. 번쩍번쩍하기에 조용히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을 들어 음악을 틀었다. 번개는 사이키 조명이 되었고 내 방은 클럽이 되었다. 즐거움이 조금 남아있던 두려움을 먹었다. 한참을 웃었고 공포 없이 잠이 들었다. 잠드는 순간까지 웃고 있던 기억만 남았다.
내가 산으로 오지 않았다면 그림으로 단순화시킨 번개모양을 이토록 가깝게 마주할 수 있었을까. 이곳에 왔으니 볼 수 있고 천둥소리를 비트로 번개를 조명삼아 놀 수 있었다. 나는 자연을 통제할 수 없으니 함께 노는 방법을 익혀 간다. 이제는 가끔 번개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고, 나와 자연사이의 틈이 점점 좁아져 간다. 자연과 잘 지내기 위하여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