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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침내 Aug 23. 2024

단어와 나 사이의 틈

김종원 작가의 글과 책에 종종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농밀’이다.

나는 ‘농밀하다’라는 단어에 묘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농도의 짙음. 섹시함과 퇴폐미가 공존하는 분위기, 재즈카페의 음악과 함께 어두운 분위기 같은 것이다.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듣기 힘들었으나 책을 읽으며 가끔 접하게 되는 단어다. 그래서 평소에 잘 쓰이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가수 김윤아가 노래 가사에 이 단어를 썼을 때 ‘와, 이 단어를 썼네.’ 생각하며 감탄을 했다. 내가 아는 ‘농밀’이라는 단어와 노래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단어는 노래와 합이 잘 맞았다.


김종원 작가가 쓰는 ‘농밀’이라는 단어에 ‘응?’이라는 의문과 ‘여기서 이 단어를 쓴다고?’라는 생각을 했다. 글에서도 강연에서도 등장을 하는데 자꾸 거슬리고 신경이 쓰였다. 내가 생각한 단어와 이질감이 생겨 몰입도가 떨어졌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네이버 사전을 검색했다. 순간, 당황하며 놀란 것은 단어의 의미 때문이 아니었다. 실제로 사전을 찾아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어떤 과정으로 그 단어가 나에게 각인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내 마음대로 1차원적인 인식을 하고 있었다.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농밀 濃密

1. 형용사 짙고 빽빽하다.

2. 서로 사귀는 정이 두텁고 가깝다.

사전의 내용을 보고서야 작가가 ‘농밀’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보다 내가 만들어 놓은 단어의 이미지가 얼마나 더 많을까.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잘못된 해석을 하며 살게 될 건가. ‘툭’하고 튀어나와 나를 거스르게 하지 않는다면 계속 내 맘대로 뜻을 가지고 갈 단어들이 많겠다고 생각하니 조금 무섭기도 했다. 같은 단어를 다르게 인지한다는 것은 소통과 이해의 면에서도 차이가 생길 것이다.


지금까지 모르는 단어를 찾을 때, 비슷한 말을 찾고 싶을 때 사전을 주로 활용했다. '농밀'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불편해하며 작가의 글을 읽었을 것이다. 잠자기 전 독서로 사전을 읽는다는 작가(누구였는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가 있었다. 정확한 표현을 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농밀'은 나무 같은 단어이며 숲과 같은 단어다. 땅속에 깊이 뿌리박고 땅 밖으로 빽빽하게 자신을 키워 만들어 낸 숲. 이제 내게 '농밀'은 '숲'이라는 이미지가 추가되었다. 단어와 나 사이에 틈이 생긴 것은 안다고 생각한 착각에서 비롯되었다. 아마도 수많은 단어가 그렇게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바로 잡는 일이 숙제로 남겨졌다. 생각과 글이 선명해지기 위해서 단어를 제대로 알아가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다.


lukasz-szmigiel--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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