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낯 선 벌레가 부쩍 많이 날아다녔다. 어차피 아는 벌레나 곤충의 수는 많지 않아 처음 보는 날벌레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상한 벌레는 아침마다 사무실 앞에 까맣게 무더기로 죽어있었다. 상쾌한 아침이 아니라 인상 쓰고 시작하는 아침이 며칠간 계속되었다.
“이게 무슨 벌레야? 너무 많아.”, “아침마다 청소하려면 너무 징그러워.”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주고받았지만 누구도 그 벌레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침마다 빗자루질을 하며 투덜거림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우연히 인터넷 신문 기사로 벌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러브버그’라고 했다. 유충은 토양에 양분 공급의 역할을 하며 성충은 꽃가루 옮기는 일을 한다. 생태계에 좋은 영향을 주므로 익충으로 분류되어 있는 벌레라고 했다. 갑자기 수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불편해졌고 민원신고가 증가되었다. 수치 또한 계속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러브버그를 해충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러브버그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식은 바뀌었다.
갑자기 벌레가 많아지는 변화 원인은 점점 올라가는 온도에 맞춰 개체수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올해 우리나라 기온이 평년보다 높다. 고온다습한 기후를 좋아하는 벌레는 좋은 환경과 만난 것이다.
산이 주 활동지였던 벌레는 도시까지 점령했다. 이사를 간 것이 아니라 활동지를 넓힌 것이다. 늘어난 개체만큼 산에 사는 수도 이전보다 많아졌다. 등산로마다 레드카펫이 아니라 블랙카펫이 깔려있다. 바사삭 밟히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걸음마다 소름의 축제를 경험해야 한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에 배배 꼬기도 하고 머릿속이 간지러워 박박 긁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된다. 눈앞에 거뭇거뭇 뭔가가 계속 날아다니고 바위는 벌레로 득실거려 검게 보이며 까만 사체 위로 새로운 죽음이 쌓여가는 과정을 보게 된다.
한 걸음 내딛는 일이 공포가 되어 꼼짝하지 못하고 계단에 한참 서있었다.
‘원인이 기후라잖아. 이 상황은 너도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하여 완전히 피할 수 없는 공범자야. 그러니 멀쩡한 애들 떼 지어 다닌다고 뭐라고 하지 마. 얘들도 익충으로 살고 싶지 해충으로 오해받으며 살고 싶겠니.’
벌레가 늘어나는 것이 기후가 원인이라면 나 역시 그런 현상 앞에서 당당할 수 없다. 기후문제는 환경문제와 연결된다. 환경을 망가뜨리는 일에 많은 동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결과에는 과정이 있고 원인이 있다. 한숨 쉬며 얼음처럼 굳어 서 있을 때 러브버그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퉤 퉤' 아무리 뱉어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날은 원죄와 같은 선악과 한 개가 긴 시간 동안 목구멍에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