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에서의 골프 이야기
골프와 테니스가 젊은 분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최근 불경기 조짐이 보이면서 다시금 활기를 잃어 가고 있으며, 지금은 중고 물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나이 50이 넘게 되어 요즘 모임에 가면 너 운동하냐?라는 질문이 많은데, 이 운동은 십중팔구가 아니라 열 모두 골프를 지칭한다. 그래 운동 좀 하지, 등산, 테니스 등등 이라고 하면 어디서 되지도 않는 개그를 치느냐는 듯한 표정만 돌아올 것이다. 마치 50대는 운동이 당연히 골프밖에 없다는 듯이 들려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이러다가 50대 이상에게는 골프가 `SUV=JEEP`처럼 `운동=골프`로 고유 대명사화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정말로 쓸데없는 걱정도 들 정도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져도 젊은 세대보다 잘 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스포츠가 골프라서 그럴 거라고 예측은 하지만, 사실 좀 불편하게 여겨지는 동일시(운동=골프)이다.
나는 이런 저런 취미 부자이면서도 호불호가 명확하여, 다른 많은 취미에 비해 골프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전국의 수많은 골프 애호가들께서는 당연히 제 의견 대부분에 대해 동의를 안 하시겠지만, 그냥 이런 의견, 이런 사람도 있다고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라떼 세대 직장인들은 골프가 직장생활의 일부라고 배웠다. 골프를 안 한다, 안 배웠다고 하면, 마치 직장생활을 충실하게 안 한다는 듯한 편견 어린 핀잔을 듣는 일도 다반사였다. 특히 영업이 주업무인 분들에게는 골프가 고객사의 담당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간주되어 왔다. 접대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에, 골프만 치는 것도 아니고, 끝나고 저녁에 술자리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하루가 다 가는 동안의 인연이 쌓이게 되니, 이러한 끈끈한(?) 비공식적인 관계는 당연하게도 업무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오래된 라떼세대는 당구나 골프를 쳐서 `현명하게 돈을 잃어 주는 법`도 농담 삼아 인수인계하는 걸 본 적도 있었다.
50대 이후의 취미에 대해서는, 골프를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지는데, 본 글에서는 이를 좀 편하게 줄여서 `골프`와 `비골프`로 약칭해 보겠다. 비골프는 또 안골프와 못골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안골프는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사람, 못골프는 하고는 싶은데 시간상, 경제적 여건상 등으로 인해 못하는 사람으로 나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필자는 골프는 치고 있긴 하나, 필드를 거의 나가지 않고 있고, 무엇보다도 골프를 좋은 스포츠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자발적인 비골프라고 본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골프에 빠졌을 때는 도구를 구입하여 그립 정도는 집에서 스스로 갈아본 경험과, 샤프트의 길이를 내 취향(숏팔)에 맞게 혼자 힘으로 줄여본 경험도 있는 준매니아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단순히 `재미가 없어서` 근 10여년 동안 필드에 나가본 횟수가 10번도 안 되는 듯 하다. 그 이유들은 아래와 같다.
일단 앞의 말 그대로 재미가 없다. 동일한 스윙 폼을 항상 유지해야 하며, 조금만 연습을 게을리해도 표가 난다. 실력을 유지하려면 매주 연습을 해야 한다는데, 그러기에는 좋은 취미들이 너무도 많다. 결정적으로, 뭔가 짜릿함이 이제는 안 느껴진다. 드라이버 한두번 잘 맞는 손맛이라면, 실내야구 연습장 가는 게 백 번 좋다.
돈이 많이 든다. 이런저런 모든 비용 즉 그린피, 카트피, 캐디피, 그늘막 식대, 이동 교통비 등 합하면 아무래도 18홀 즐기는 데 30만 원 이상이 든다. (퍼블릭 말고 정규 코스를 가면 더 든다.)
여기에 대한민국 골퍼들은 왜 그리도 내기를 좋아하는지, 내기판 벌어지면 50만 원도 아주 간단히 나간다. 필자 같은 호구는 지갑과 영혼마저 탈탈 털린다. 골프 내기도 포커판처럼 잘하는 분은 판을 살살 키우고, 결국 나올 때 보면 잃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이렇게 돈이 나가는 과정이 그리 좋은 분위기가 아닐 때가 많은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내기를 하게 되면 분위기가 싸~해진다. 오케이도 인색하게 주고 하면 이제는 감정적 전투에 돌입하여 속칭 구찌겐세이도 성행한다. 포커는 운이라도 좀 있으면 게임이 어느 정도 될 텐데, 이놈의 골프는 운이 아니라 대부분이 실력이라서 문제다. (한두샷 잘 맞고 기뻐해 봤자, 게임 끝나면 결국은 고수가 아무리 접어줘도 이긴다.) 물론 적절한 내기가 게임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은 인정하는데, 반수 이상의 내기는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 즉, 대한민국의 영원한 명언, 돈 잃고 속 좋은 넘 없는 것이다.
운동도 별로 안 된다. 운동만 목적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에 산책하면 더 운동할 수 있고, 등산은 몇 배 가능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골프전 준비, 이동 및 미리 도착, 중간 혹은 종료 후 식사, 게임, 종료 후 샤워만 해도 7~8시간은 그냥 날아간다. 여기에 뒤풀이까지 하면 하루는 그냥 훅 가게 되고, 숙취로 다음날도 고생할 확률이 높다. 직장인들은 겨우 주말에 쉬는데, 골프 한방으로 주말이 날아간다.
각종 `하지 말라는`것 혹은 `이래야 한다는 것`이 별로 마음에 안 든다. 긴 바지와 재킷을 꼭 차려 입으라는 규정은 세계에서 보기 드물고, 어지간한 악천후(눈비)는 감수하고 그냥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누가 정한 지도 모르는 국적불명의 암묵적 룰이 있다. 한 팀 당 100여 만원 이상의 돈을 내는데, 어지간한 눈비 정도는 와서 돈 다 내고 눈비 맞으며 운동하라는 게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골프는 아래와 같은 좋은 점이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귀족` 대우를 받는다, 골프장에 도착하여 골프클럽을 내리는 순간부터, 다 끝나고 샤워하는 시설까지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게임 중에는 전담 요원(캐디)이 도와준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대, 남녀노소가 같이 어울려 모두 즐겁고 대등하게 게임을 할 수 있는 스포츠는 아마도 골프가 유일무이할 것이다. 젊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라고 힘 있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많이 나와 본 (즉, 돈을 더 쓴) 사람이 더 잘할 확률이 높다.
오랜 시간을 팀으로서 함께 하다 보니 친목 도모에는 최고의 경기다. 5시간을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며 즐기는 경기는 골프가 유일한 듯하다.
잘 관리된 그린과 필드의 탁 트임은 뷰 자체도 그렇고, 공기도 그렇고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여기에 잘 맞은 죽 뻗어 나가는 볼은 스트레스도 한방에 날려 준다.
골프는, 보통 직장인들과 못골프 들을 주눅 들게 하는 운동인 것이 사실이다. 그냥 취미 중 하나인데도, 내가 별로 재미없다는데도, 얘기에 끼기도 애매하고, 마치 능력이 안되어 못 가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는 듯한 좀 고약한 취미다. 기능성 골프 의류, 비싼 클럽들, 고가의 그린피 등등은 일반 직장인들이 즐기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게임인 것도 확실하다.
골프 안 친다고 혹은 못 친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전혀 없다.
재미도 없고, 운동도 안 되고, 비싸기만 한 가성비 꽝인 스포츠다 라고 간주하시면 된다.
세상은 넓고, 더 즐겁고 짜릿한 취미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