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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손님과 주인

by macropsia

내가 주로 일하는 병동과 외래 진료실로 가기 위해서는 호스피스(Hospice) 병동을 지나가야 한다. 호스피스라는 말은 'Hospes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손님(guest)'과 '주인(host)' 둘 다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한다. '손님'이면서 '주인'이라는 말... 뭔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의국동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양쪽이 창으로 이뤄진 연결 복도를 만나게 된다. 연결 복도의 동쪽 창가에는 화단이 만들어져 있고 화단과 화단 사이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그 자리에 주로 앉아있는 사람들은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보다는 그들을 간병하고 있는 간병인 또는 가족들이다.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마주한 서쪽 창 밖 풍경을 보기보다는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가끔은 그들 앞에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서 또는 침대에 누운 채로 함께 있는 경우도 가끔 있다. 임종을 맞게 된 원인 질환들이야 다양하겠지만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하다. 굳이 의료진이 아니어도 누가 따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분이구나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눈 깜빡임도 별로 없고 표정 변화도 없어 어떤 기분 상태인지는 가늠이 어렵다. 창밖을 응시하고 있지만 어딜 보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휠체어에 앉기도 어려워 침대 채 나와있는 환자는 눈을 감은 채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그냥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다.


연결 복도에서 내가 주로 일하는 병동과 외래 진료실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위해선 '햇살방'이라고 이름 붙여진 1인실 병실 앞을 지나야 한다. 햇살방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 중 진짜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사용하는 병실이다. 그래서 이 햇살방은 자주 '주인'이 바뀐다. 임종에 임박한 환자는 햇살방의 주인이 되어 임종을 지키려는 가족들을 '손님'으로 맞는다. 가족들은 연결 복도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서 또는 복도를 서성거리며 곧 찾아올 순간이지만 정확히 언제일지 모르는 순간을 기다린다. 이들에게선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느껴진다. 임종을 기다리는 이 특별한 공간에서도 이들은 바깥에 두고 온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전화 통화를 통해 친지와 가까운 지인들에게 임종이 곧 임박했다고 알리거나, 바깥세상에 두고 온 업무를 처리하거나, 스마트 폰으로 주식 시세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젊은 경우에는 어린 자녀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곧 임박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어른들 앞에서 뛰어다니기도 한다.


외래 진료를 마치고 2층 외래 진료실에서 3층을 거쳐 4층에 이르러 다시 햇살방 앞을 지나간다. 아까 지나갈 때만 해도 햇살방의 주인이었던 환자가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장으로 옮겨지기 위해 철제 이동 카트가 햇살방으로 들어선다. 햇살방의 '주인'이었던 환자는 이제 햇살방을 머물렀던 '손님'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햇살방의 '손님'이었던 환자의 가족은 장례식의 '주인'이 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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