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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Sep 16. 2022

ai같은 연애를 하면

내가 인형을 좋아한다고?

별로 쓰지도 않는 거, 그거 대체 왜 모으고 또 사려는 거야? 지금 니 침대에만 몇 개가 나뒹굴고 있는 줄은 알아? 천식 있어서 안된다니까? 그리고 니 나이가 몇 살인데.


집을 청소하는 저 사람이 말하는 '그거'는 인형이다. 나도 인형을 왜 모으는지는 모르겠다. 잘 때 다리에 하나씩 끼우고 다른 하나는 껴안고 또 다른 하나는 배고 자면 편한 자세가 나오기 때문에 사는 거라 생각했고.


지나간 연인들에게는 인형을 꼭 하나씩 받게 됐던 것 같았다. 매번 죽여버리는 꽃 보다는 훨씬 로맨틱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갑자기 그들 중 한 명은 헤어지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근데, 외로워요?"

그와는 나이차이가 그렇게 많이 났었는데 말 한 번을 못놨다. 내가 사람인척 연기하느라. 그리고 말 놓을 타이밍을 놓쳐서. 연애를 하고 있는건지 성격 더러운 못생긴 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고 있는 건지 헷갈려서.


어쨌거나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안외롭고 안외로워보이고 안외로운척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했어서.


"인형,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뭔가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특성을 타인에게서 알게 되는 것은 늘 묘한 일이다. 그래서 그 날 내가 뭐라고 대답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 안난다.

아마 "아닌데요.", 혹은 "몰라요" 둘 중에 하나였을 거다. 우울한 사람은 머리가 나빠진다는게 과거 기억을 하나도 못하는 것에서 실감이 난다.


그가 다른 연인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아마 의문형이 많았다는 것일거다. 내가 나에 대해 주는 정보들이 전부 영양가가 없고 실없는 소리들이 많았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아마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였을까. 배려의 성격이 짙은 질문들이 많았다.

"오늘 뭐 먹고 싶어요?"

"내일 데이트 할 때, 이렇게 계획 짜봤는데 혹시 하고 싶은 거 있어요?"

근데 그 중에서도 허를 찌르는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아직도 기억난다.

"요즘 많이 우울해요? 자주 까먹고 요즘 잠을 너무 많이 자는데. 어제 저랑 대화한 것도 기억 잘 못하고. 우울한 사람들은 기억이 흐릿한 경향이 있어요."

저 말에 나는 "아닌데요. 그냥 요즘 바빠서 그래요"라고 부정하기 바빴다. 제기랄. 얘기하면 얘기할 수록 ai와 대화한 것 같다. 건강 어플이나 생리 어플에서 '수면 시간이 늘었어요!' 혹은, '생리 주기가 이번엔 길었네요!' 같은 말을 듣는 것 처럼. 아직도 의문인건, 저때 내가 많이 자긴 했었는데 내가 그걸 일일이 말하고 자러 갔나? 싶은 섬뜩한 기분이 든다. 뭐 내가 기억을 못한거겠지.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인형들이 모두 없어져있었다. 모친이 내가 천식이 다시 생길지도 모른다고 다 옷장에 압축시켜 넣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인형들은 다시 생겨났고, 나도 모르게 그 솜덩어리들에게 자아를 붙이게 되었다. 20살이 넘었을 때도, 그짓을 버리지 못해, '어제 얘만 껴안고 잤으니까 슬퍼했겠지? 오늘은 얘랑 안고 자야겠다'라며 번갈아가며 잤다.


오랫동안 써온 가면은 정말 내 것인 것 같아서, '원래'라는 것을 마주했을 때 괴리감은 꽤 크다. 내가 왜 인형을 좋아했지. 안외로운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정말 외로운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원래 외로운데 안외로운 가면을 오래 써와서 그런 걸 거다.


갑자기 귀찮아질 때 밀어버리면 밀려지는게 인형이고, (아까 했던 말과는 반대되지만)그들은 하나도 상처를 받지 않았다. 로맨틱하면 로맨틱하고 비현실적이라면 비현실적이었다. 쓸모가 없다면 없는만큼 배신감도 없었다.


아무튼 난 인형이 좋아.




왜 인형은 사람이 될 수 없는거지

뇌와 장기가 없어서?

순환기계나 혈액도 없어서?

태초부터 재료가 솜과 천이었지 정자와 난자가 아니었어서?

근데 그 전에 인형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긴 한가?

나는 사랑받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인형보다 별로인 사람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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