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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Sep 08. 2022

나는 강하고 단단해서 자꾸 부서지는 사람

제 3자의 시각은 당사자의 눈보다 정직할 때가 있다.


본인은 스스로에 대해서 자주 생각해와서, 자신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시기가 있었다. 너무 오랜 기간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연기를 해오면 내가 누군지도 잊게 되고, 이것도 깨닫기도 전에 타인에 의해 본모습을 알게 되면 창피해지기도 하고 그걸로 화가 날 때도 있다.



융통성이 정말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없을지도 모른다. 조금 나아졌을 뿐이겠지.

덕분에 선생님들은 모친에게 나는 공무원 시키면 잘할 거라는 얘길 그렇게 했다. 그게 비꼬는 말인 줄도 모르고 다들 진로 고민할 때 난 장래희망 없어지면 공무원 아무거나 하면 되겠다고 대답했다.

모친은 비꼬는 것과 칭찬도 구별 못하냐며 싫어했고,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었다. (요즘은 이런 성격이 살기 편한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주 힘들었다.)



그 와중에 드셌던 성격 탓에 학교를 다닐 때엔 공격을 받는다거나 기분이 조금 나빠지면 교칙을 어기게 유도해서 선생님들께 알려지게 만들었다. 싸움을 잘하는 편도 아니고 화나면 눈물부터 나오는 성격 탓에 애초에 우는 모습을 보이기가 싫고 창피해서, 아예 처음부터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까 그 공무원 시키라는 돌려 까는 말은 아마 여기서 유래됐을 것이다.



성격유형 검사를 한 적이 있다. 흔히 말하는 mbti.

;세상은 거대한 체스판과 같다. 낮은 공감능력, 업무 효율과 이성이 앞선 용의주도함.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권위적인 상사와는 상극이라 쓰여있던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학급 사람들과 다르게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교칙을 적용하는 데에 해당사항이 없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학생이 일방적으로 사과를 해서 용서를 구하는 구조가 이해가 안 됐다. 태어나서 용서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집에서 쫓겨날 때도 그 길로 문을 두드리지 않고 최대한 멀리 집을 떠나는 게 기본값이었던 난 아직도 사과를 하지 못한다. 용서를 받지 못할까 봐. 사과하면 뭘 잘못했냐는 물음에 교사의 권력 남용을 학생이 짊어지는 중이라고 곧이곧대로 대답하게 될까 봐.


그러니 어느 날 잘못 걸린 담임 한 명은 1년 동안 덕분에 나와 오랜 기간 싸워야 했다.

우리 반은 교칙에 적용받지 않고 담임이 만든 법을 지켜야 했다.

그러니 등교해서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나도 모르게 결석이 되어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행평가가 0점이 되어있었고, 나도 모르게 서기에서 없어져있었다. 그런 담임에게 화가 나, 당돌하게도 교장실로 들어가서 담임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러니 담임도 일단 죄송하다는 말을 남발하는 여느 학생과는 달리 전혀 져주지 않던 내게 많이 화가 났었다.


담임의 부름에 듣지 않고 복도로 나갔을 때 내 멱살을 잡으면 나도 담임의 멱살을 잡았었다.

이 일로 선도위원회에 넘겨졌을 때, 어차피 선생님들은 어른이라 담임의 편일 것이라고 말하며 없던 일로 해주거나 학교에 안 나오게 정학 처분을 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나 싹수가 없는데, 저때는 상황의 인과관계가 훤히 보이는데도 철저한 어른들이 참 미웠다. 모친마저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을 때 다행히 법은 내 편을 들어주었고, 없는 일로 처리되었지만 담임의 눈빛에는 분이 서려있었다. 나는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들을 아주 잘 알았다. 그래서 나는 교칙과 같은 법을 좋아했다. 도움을 요청해도 누구에게도 도움받을 수 없고 외로운 자리에서 공격을 받을 땐 법이 날 보호한다. 이 뒤로 나는 사소한 것들까지 더 철저하게 지켰던 것 같다.


근데 갑자기 어느 날 몇 번 말만 몇 번 섞어본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너는 정말 여린 사람 같아.
아닌 척하면서 센 척 하지만
넌 맨날 울고 싶은 거지?

그게 무슨 소리야?

늘 벽을 두르고, 마음에 상처가 난다거나 울고 싶어도 이젠 면역이 생긴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왔는데, 저런 말을 들으니 새삼 내가 정말 약한 사람이었니 싶기도 했다.

후회는 늘 밤에 일어났고,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이라도 자기 전엔 걱정이 잠 못 자게 한다.


혼자 있는 걸 좋아했으면서 외로움을 탔고

이성적이고 날이 서져있었으면서도 무너진 감정을 주워 담지 못해서 자주 부서졌으며

이젠 충격적인 상황이 몰아쳐도 아무렇지 않아 했으면서 사소한 생채기엔 그렇게 여러 번 아려했다.

나는 나의 핸디캡과 부족한 것, 나의 장점이나 특별한 점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동시에 저런 이중적인 면모가 드러나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맞나 의심하며 손과 팔을 만져본다.  

핸디캡과 부족한 것을 알고 있다면서 아직까지도 고치고 있지를 못했고, 장점이나 특별한 점을 알고 있다고 했으면서 더 키우거나 뽐내지 못하고 점차 퇴화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단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매일 울며 지내는 사람들보다 더 약하고 잘 부서지는 재질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언젠가 나는 그저 단단한 게 아니라 '매우 딴딴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너무 단단하면 부서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넘어질 때는 가장 먼저 내던져지며 나를 보호했던 손도 어느 날엔 갑자기 나를 죽이려 할 때가 있었다.


외로움에 관한 문제라면 차라리 잘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매번 잘 해왔던 것이니까. 그런데 소외감에 대한 문제라면 조금 달랐다. 자꾸만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사람이라도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보게 만들었다.

나는 그래서 자꾸만 부서지고 구겨져서 모자란 것들로 다시 구성이 되었다.



이따금씩 그때가 생각나면 속마음으로 한두 번씩 부모님께 여쭤본다. 다른 부모님들은 욕먹으면서까지 '내 자식은 안 그래요'라고 하는데, 내 편 한 번만 해줄 생각은 없었는지. 그때 당시 감정적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도움을 요청해오는 나를 철저히 외면할 정도로 당신들의 체면에 혹시 내가 걸림돌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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