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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Jan 03. 2023

몽고반점

어떤 설문 조사엔 이런 질문이 있었다.

'나는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다.'

대답은 예, 혹은 아니오 두 개로만 할 수 있었는데, 퍽이나 고민하겠다 바로 아니오에 체크를 했다가도 예로 고칠까 고민했었다.

자신이 왜 사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는 무굔데, 신은 간혹 있다고 믿기도 했다.

사주는 괜찮은 통계학적 학문이지만, 환경적 측면이 반영되지 않기에 못 믿을 미신 따위라고 생각했으며,

세상에서 절대 불변의 진리는 과학적 영역에만 해당되고, 나머지는 예외가 있는 엉터리라고 생각했다.


근데 대개 사람들은 저렇지 않더라.

미신을 전혀 믿지 않거나, 믿거나.

사주를 믿거나, 엉터리라 하거나.

내가 미친놈 소릴 듣는 이유일 것 같다. 생각이 많으니 늘 다방면으로 생각하게 되니까.


검사 같은 것을 할 때면 하나에 완벽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단순한 심리 테스트 같은 거라 가정했을 때,

Q) 과제를 할 때 당신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1) 계획을 잘 세우고 짜여진 계획 대로 한다.

2) 최후의 순간까지 미루다가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한다.

이 경우 둘 다 해당하는 때가 있다. 주로 쏠리는 때가 따로 존재하지 않다거나, 둘 다 해당하는 경우. 혹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 등등.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하나에 완벽한 성향을 보이기에 정확할 것 같기도 하다.




사주에 귀문관살이 끼었다고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귀신들이 이 문으로 드나든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서 한동안 스스로 사주를 보려 책을 뒤적였던 적이 있었다. 점쟁이들의 말엔 근거가 있었다.

그 많은 귀문 중에 하필 애를 낳다가 죽은 처녀귀신. 왜 남편복 없다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왜 애를 낳기 두려워하는지도 억지로 끼워 맞추면 이해가 간다.


한결같이 듣는 소리. 좋아하는 거랑 천직은 틀려요. 공부 좋아하잖아요. 안돼요. 예술, 예체능 하세요. 혹은, 오래 못살아요. 혹은, 자주 아파도 못 불리는 신이라 다른 사람들 점 봐주면서 푸세요. 늦게 결혼하세요 등등.

 



어렸을 때 없어졌을 줄 알았던 몽고반점이 아직도 남아있었다는 것을 20살이 되어서야 알았다. 부모님도 몰랐을 거고 나도 몰랐던 사실을 남에게서 듣는 게 여간 창피했다. 그땐 아마 넘어져서 생긴 멍일 것이라고 귀가 빨개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대충 되도않는 변명으로 둘러댔지만 집에 돌아와서 만지작 거리며 태어나서 처음 피부과를 가볼까 이틀 정도 검색했던 것 같다. 이게 대체 뭐가 귀엽다는 걸까 뒤를 돌아보며.


어쩌면 내가 한강 작가를 좋아했어서 더욱이 창피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다들 성인 되면 없어진다던데. 이게 안 없어져서 난 아직도 애 같이 행동하는 것 같았다. 없어졌으면 좀 나았을까.




하루는 모친이 방정리를 하다 애기수첩을 찾았다며 이런 얘기를 해줬다.

태어난 시를 그때 처음 알았다.

"의사가 원래 이 날 태어날 거라 했는데, 네가 자꾸 안 나와서 제왕절개할까 생각했었어. 주사를 몇 번이나 맞았는지 몰라."


어쩌면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모친의 뱃속에 있었을 때도 자아나 선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날 태어나면 내 삶이 참 죽고 싶어질 사주란걸 알아서. 힘든 사주란 걸 알아서.


그럼에도 삼신이 태어나기 싫다고 하는 나를 두고 빨리 태어나라고 세게 여러 번 내 엉덩이를 때리는 바람에 몽고반점이 아직까지도 안 없어지는 걸까.

태어나서도 다른 애들 한 번 맞을 때 늘 나는 여러 번 맞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여러 번 맞아가며 사는 것일지도.



내 머리가 그렇게 좋다면서 정작 탯줄로 목을 감을 생각은 못했었나.

그럼 머리가 좋은게 아니지.

싫다. 사주가. 미신이. 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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