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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Mar 09. 2023

분리불안


똘이가 분리불안이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갔던 동물병원이나 애견미용을 맡겼을 때 케이지에 넣어놓을 때마다 짖었던걸 생각하면 그럴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분리불안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미용사가 원래 강아지들 가둬놓으면 짖는 애들이 있다고 해서.


그렇다고 해도

애견호텔을 적응하지 못하는 똘이를

명절엔 혼자 집에 놔두고 큰집에 1박 다녀올 동안 물도 밥도 하나도 먹지 않은 똘이 상태를 보고 미안한 마음만 들었지 ‘아, 얘가 분리불안이 있구나 혼자 놔두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은 못해봤던 것 같다.




똘이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미용사에게서 유선 종양이 만져지는 것 같다는 얘길 들었을 때, 많이 부끄러웠다.

추석이나 구정 같은 명절에 애견호텔에 맡길 때, 다른 먼저 맡겨진 강아지들의 한복과 볼터치 염색, 머리 장식들을 볼 때의 감정과 비슷했다.



모친은 수술을 시키지 말고 똘이가 죽으면 이대로 보내주자고 했다. 나는 당연히 엄마가 수술을 시켜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방치하다가 많이 늦은 것 같은 몇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야 일주일간의 집 근처 모든 동물병원의 진료 예약을 잡고 다음날 한 병원 수술대로 보냈다.


똘이는 가족들에게 많이 버려졌다. 똘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모친은 안락사 얘길 자주 꺼냈고, 부친은 산책시켜주는 게 귀찮다고 술 마시고 공원에 똘이를 버리고 왔다.


또 어느 날은 다른 집에 분양을 보냈다가 파양 당해서 다시 우리 집으로 온 날도 있었다.


이 이후로 똘이는 자신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매일을 살았을 거다. 나도 어렸을 때 그랬는데.


곧 9살인데 언제 버리나, 공부를 잘하면 안 버리지 않을까 하며.


머리가 반쯤 미쳐야 살아남을 수 있는 언제나 즐거운 우리 집.

그런데 설령 똘이가 정말로 버려져서 내가 동네를 돌아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분명 예쁨받을거기 때문에.


눈치가 선하고 사람의 비위를 불쌍할 정도로 잘 맞춰줘서.


똘이가 진료받고 난 후 병원 케이지에 갇혀서 짖을 때마다 냈던 소리를 선명히 기억한다.



집에 놀러 온 남자친구를 밤늦게 보내고 한참을 멍하니 현관 신발장 앞에서 조용히 서 있는 나와는 달리 우렁찬 목소리.



나는 외갓집 여자들의 정신머리가 온전치 않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녀들에게 장가를 온 남자들이 다 죽거나 망가졌지.


그녀들은 자신이 잘못된 줄 모른다.


그녀들의 남편들이 갈려나가는 걸 보면서 나는 똘이가 차라리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구태여 품종견이 아니어도, 다른 집에 입양 갔을 때 분명 우리 집에서 있던 것보다 예쁨 받았겠지.

분리불안도 없고 버려지는 일도 없고 명절땐 한복을 입혀서 다 같이 큰집으로 갔겠지.



가족이라는 더럽고 거창한 틀 안에서

모친과 부친은 서로를 지키지 못했고


온전하지 못한 그들 사이에서 자란 나는

미쳐가고


그래서 똘이도 못 지키는.


똘이의 생각이 듣고 싶다.


지금 주는 사료는 맛있니

수술하고 나서 깨어났을 때 널 버렸을까 봐 많이 불안했니

산책 시간은 적당하니

산책할 때 정해진 코스 말고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진 않니

언니가 많이 무섭니 그렇지만 내가 너 많이 좋아하는 거 알고 있니

언니가 산책 자주 못 시켜줘도 잘해줄 테니까 같이 살지 않을래?


라고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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