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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Oct 26. 2022

폐소 공포증

숨도 못 쉬게 만원인 버스를 무모하게 잡아 타는 어르신들,
쉬는 시간이 5분인 학교에서 그새 흡연을 하고 오느라 담배 냄새에 교수도 숨을 못 쉬겠다는 강의실,
엉터리 논문에 시간이 아까워지는 학술제,
2차원이 뭐냐는 물음에 모름, 혹은 원, 또는 곡선이라고 대답하는 많은 학생들,
0.06을 올림 하면 0.7이라고 자신 있게 수업하는 교수,
그 실수를 내가 나이를 먹어서 머리가 안 돌아간다고 민망함을 대변하는 어색한 태도,
그리고 해가 지면 다시 인간적으로 하교를 불가하게 만드는 통학 환경.


간혹 학교를 다니다 보면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몇 년의 아주 긴 시간을 낭비하고 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는 여기서 뭘 배우고 있는 것인가 라는 종류의.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에 줄이 없어지지 않는 테트리스를 하는 것마냥 몸을 끼워 넣다 보면 나도 무모한 어르신들과 닮아가는 것 같은 기분에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내가 봐왔던 연세 드신 분들은 매우 느긋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으며 온화하거나 신사적이거나 자상하다 따위였는데. 한편으론 반대로 힘든 노동을 하시는 분들이 더 대단한 분들이라고 배웠어도, 가까이서 본 그분들은 숨소리에서 세월의 냄새(그렇지만 불쾌한)와 격 없는 행동들에 지금까지 내가 배운 존중은 어쩌면 위선이자, 주입식 예절이었구나 싶다.

바쁘게 사는 그분들도 어떻게 보면 출석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처럼 똑같이 그냥 매일 그래 왔듯 출근하려고 발버둥 치는 건데, 나는 가족들처럼 그것을 포용할 수 없었다. 자꾸 몸으로 밀고 다른 사람을 물건 치우듯 밀쳐내는 빌어먹을 행동이 몹시 천박해서 화가 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친절이라곤 가까이에서 살이 맞대지는 어르신들보다, 집에 오는 기사님들과 건물 창문 청소를 하시는 분들께 커피를 하나씩 쥐어드리는 것까지였다.

동시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도 과연 그분들과 섞여있을 때 나처럼 화내지 않을 수 있나 궁금해졌다.



전문대를 다니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4년제였다면 시간표라도 널널했겠지. 나는 매일 막노동을 하는 기분이었다. 통학도. 공부도.


해열이 너는 졸업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 보인다고 말하는 가족의 말에, 과거엔 전혀 없었지만 지금은 몹시 두렵다고 답했다.


지금 내 기분은 몇 년 동안 부산 여행을 가겠다고 숙소와 식사부터 비용까지 모든 세밀한 계획을 세웠는데, 부산행 기차가 도중 고장이 나서 갑자기 대전에 내려진 기분이라고. 그래서 나는 지금 급한 대로 노숙하며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과자로 끼니를 때우고 급한 대로 지내고 있는 것 같다고.

가족은 늘 나를 몰라서, 내 생각들에 대해 늘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가족의 표정은 아마  화난 표정과 놀란 표정일 거다.


특별히 별다른 일은 없었는데 학술제 참여를 강요하는 교수의 태도가 내겐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미리 나눠준 논문 파일은 전혀 흥미를 끌지 않았으며 난무하는 비문에 어떤 글은 실험의 목적과 얻은 결론이 일치하지 않았다. 창피했다. 어차피 동문들이 올 거고, 학생회는 그곳에서 학생회의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코로나로 인해 졸업자들과 인연이 없고 학술제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빠져도 되는 것 아닌가. 참석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으나,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교수나 관계자들의 몫일 거다. 교수는 그것이 우리가 못 배워서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거라 했다. 나는 출근길의 압사당할 것 같은 대중교통을 떠올렸다. 교수도 아침에 그곳에서 밀려지고 치워져본적이 있을까. 교수는 노인의 냄새를 숨길 수 있을까.


교수가 참여를 유도했던 방식은 홍보가 아니라 강요와 재촉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아마 더 가기 싫었을 거다. 두 시간에 걸쳐 일곱 번의 강요가 있었다. 밥을 먹다가도, 집을 가다가도 핸드폰이 계속 울려대서 앞에 앉아있던 남자 친구를 보면 바로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못 배운 건 교수 같았다. 아니, 그냥 서로 못 배워서 가르쳐주는 거라고 하자.


그런데 왜. 왜. 진짜 그냥 재촉 문자 몇 번 받았다고, 체할 것 같은 기분을 받았다고 집에 가는 도중에 눈시울이 자꾸 붉어졌다. 그래도 집에 도착할 때 까진 울지 않았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거니까.


집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모친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겨우겨우 없는 목소리들을 빚을 지고 끌어내어 재수학원에 한 번만 다니면 안 되겠냐고 하자, 모친은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나를 믿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재수학원에 다니는 게 지금의 삶보다 백배 행복할 거다. 학교에서 뭘 배우러 다니는지를 모르겠다고. 천박함과 욕을 체화하러 학교에 다니는 것 같다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내 체구보다 크게 우는 것은 늘 졸려서 자고 일어나면 죽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들게 한다. 잠과 죽음이 비슷한 거랬는데. 그래, 울고 나서 졸린 이유는 죽었으면 좋겠어서 그런 거다. 빌린 목소리의 빚을 갚지 못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 울고 나면 늘 그래 왔듯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할 일을 하러 가면 되는 거고, 나는 거기서 다시 털고 일어나면 되는 일이다. 졸면서도 앞에서 공부하고 있는 남자 친구를 두고 차마 자러 갈 수가 없었다. 참고 참다 저녁이 되어서야 졸리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나 졸려.”
“졸려? 왜 졸려. 오늘 아침에 일찍 학교 다녀와서 그런가?”

왜 저런 질문이 나왔나 생각해봤는데, 남자 친구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애초에 쉽게 울거나 약한 사람도 아니어서 평소에도 울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울어본 적이 없는 그는 당연히 사람이 울고 나면 졸린 줄도 모를 것이고, 나는 늘 우는 것을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응, 오늘 학교 일찍 다녀와서 좀 많이 졸려.”


이제 저녁 먹고 다음날 되면 다시 공부하러 가면 되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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