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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Aug 17. 2023

재활용

    준비하던 작품들을 엎었다. 완성은 했지만 완벽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 작품이라고 하는 것 자체도 웃기지만. 생각해 보면 대단했다. 


붓은 중2 때 놓아버리고 조소는 배운 적도 없으면서 아예 처음 그려보는 기초 디자인과 조각을 해보겠다고 유튜브 몇 번 보고 따라 하려 했다니. 몇 번 연습하고 시도했어야 했는데 연습도 없이 '이렇게 하면 완성되겠네'라는 생각으로 바로 시도하니 결과물은 조금씩 어색했다. 



이상한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그 사태. 나는 그 상태를 가장 싫어한다. 


뭐 하나 완벽하게 해내본 적이 없는 내가 뭘 완공한 적이 있었나. 이번에도 나는 실패했다. 

내가 미술을 전공했더라면 조금 달랐을까. 

근데 이런 상상해서 뭐 하나.



화실 건물 재활용장에 그대로 버리고 털고 나오자니 막상 뒤돌아서 멀리서 보면 내가 저렇게 많이 정교하고 열심히 만들었었나 싶다가도 내 눈에 익은 것들이라, 내 손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 그런 거라고 체념한다. 


다른 사람이 재활용하러 나왔다가 괜히 이거 보고 어떤 미친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 뭔가 잘 안돼서 버리고 갔을 거라 생각할 것 같아서 대충 검은 비닐들로 감싸고 와버렸다. 




근데 왜 다른 때보다 괜찮아 보였지. 


보통 멀리서 보면 괜찮아 보일 때가 많아서 화실에서 몇 번이고 두고두고 이걸 어쩌지, 다시 새로 만들까 손톱을 잘근잘근 씹을 때 말고 재활용장에서 내 작품들을 그만치 멀리서 본 적이 있긴 했나 싶다. 



그때 나는 모종의 회상에 잠겼다. 


-


초등학생 때 몰래 공책에 토막글 조금씩 아무도 못 볼 거라 생각했던 나만의 공간. 


그 당시 그곳은 정말 나만의 공간이었다. 과잉보호가 너무 심했던 부모님도, 선생님도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곳. 


순진하게 너무 믿었기 때문이었을까. 

담임은 모든 아이들이 하교한 후, 평소 내가 쉬는 시간마다 그 공책에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적는지 궁금해서 펼쳐봤다고 했다. 


담임은 처음엔 그것을 보고 내게 창작력이 뛰어난 아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칭찬. 


이것도 있고요, 이것도 썼어요.라고 들떠서 보여드렸다. 


자기 존재에 대해서 절박하고 

칭찬에 굶주린 인간은 이런 거다. 


나는 그날 밤에 내가 잠든 사이에 새벽에 부모님끼리 대화하는 것들을 모두 들었다. 


자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실은 잠귀가 밝아서 모두 듣고 있었다. 


"자기야, 이거 얘가 쓴 글 이래. 봐봐요."

"뭔데 이게?"

"하, 일단 보라고요. 담임이 뭐라고 연락 왔는지 알아요? 정신병원에 보내야 하지 싶어요 진짜. 창피해서 얘 데리고 못살겠어요."

"대체 어떻게 하면 9살짜리가 이런 미친 글을 써. 어디 환자가 쓴 것 같네."



나는 담임이 내게 했던 모든 예술성에 대한 칭찬이 실은 다 거짓이었단 것과 부모님이 실은 내 부모님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그리고 내 편은 없다는 상실감이 들었다. 


그 뒤로는 누군가가 내게 칭찬을 하면 대체 그 속에 나에 대한 어떤 모욕감을 숨기며 나 따위의 인간을 배려까지 해가면서 웃으며 칭찬을 해주는 것일까 신경 쓰게 되었다. 


어머, 해열이는 이걸 참 잘하는구나라고 말을 한다면

작위적으로 눈을 빠르게 피하면서 무얼 바쁘게 하는 척을 하며

.... 나요?라는 대답 밖에 하지 못했다.

당신은 내게 어떤 불쌍함을 느끼고 이런 말을 해주는 걸까 하며. 


-


20살이 되던 겨울에 나는 그 당시 썼던 글을 정확하게 기억해 내어 백일장에 글을 더 다듬고 살을 붙여서 투고했다. 

그리고 입선까지 했다. 높은 상은 아니었지만.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때 나는 자랑하고 싶었어도 그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못했다. 

그 소설 보여달라고 할까 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부모님 생각에 몰려오는 그 참을 수 없는 분노감을 상을 받으며 만들어낸 웃음들로 막아냈다. 

모든 것을 뚫는 창과 모든 것을 막는 방패. 

방패가 이겨야 했다. 


예술이란 진짜 대체 뭘까 고민했던 하루였다. 


난 그 글을 꾸역꾸역 회상해 내서 투고할 배짱을 어디서 났는가. 

나는 분노로 태어난 인간인가. 

난 어떻게 상을 받을 수 있었나. 



내가 재활용장에서 느꼈던 그 마음을 잊지 않았기에 20살에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로이자 합리화는,

"처음치곤 잘했네."였다. 


이런 말을 해줄 스승도, 어른도 없이 벌린 일이었으니, 

내가 나를 타인으로 보는 척 혼잣말로 내게 말했다. 

누가 보면 진짜 미친 사람으로 봤겠지. 


그래, 처음치곤 잘했다. 

다음은 없을 거다. 

실패가 두려워서. 

난 이제 그 어떤 것에도 애정을 주며 노력을 들이지 않을 거다. 


결국 나 혼자가 벌인 일이고, 나 혼자가 수습한 것이지만. 


나는 재활용이 될 수 있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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