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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Mar 09. 2024

내가 공포-회피형 애착이 된 경로


공포회피형 애착을 완화시키는 방법은 이 유형에 대해서 알아보고, 주변 환경과 심리에 관해서 공부를 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1.

내게 '집'이라는 공간은 특히 화장실과 옷장에선 죽음과 가장 가까운 장소였고,

친구들이 "집에 가고싶다"라고 말하는 것에 자주 공감을 하지 못했다.


나는 학대를 당하며 자랐다.

옛날에는 이게 너무도 당연해서 다른 집 아이들도 이렇게 지내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내가 점점 자라고 넓은 세상을 접하게 되면서 우리집은 정말 가히 기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나 못했다.


늦은 나이에 그런 깨달음은 아직까지도 부모님께 분노로 남아있어서,

간혹 부모님 얼굴을 뵈면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 그들이 과거에 내게 했던 행동이 학대였다는 사실을.





2.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맞기도 맞았지만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늘 도사리는 공포심과 사랑의 부재였다.

이것 때문에 나는 이 나이까지도 애착 때문에 허덕이며 자주 넘어졌다.


모친이 했던 행동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자비한 행위들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맞다가 안방으로 도망쳐 옷장에 숨은 나를 식칼을 들고 찾아온다던지

때리다가 '니 때문에 손 까졌잖아'라며 쫄대를 100개를 사놓고 그게 다 부서질때까지 맞았다.

한 번 배운 수학 연산을 바로 풀지 못하면 200대를, 중국어를 잘 못외운다면 그 날은 잠을 못자는 방식이었다.

어느 날은 핏줄이 터져서 여름에 반팔을 입을 수가 없었고 어떤 날은 하루 전체를 손들고 벌서며 앉지 못해서 밤에 팔이 내려가질 않았다.

그러던 모친은 자주 나와 죽고 싶어했다.

특히 차 안에서나 화장실 안에서 유독 더 자주 그랬다.  

내 머리를 감기다가 샤워 수도꼭지에 머리를 박으라거나

수건으로 숨을 막아버렸다.

또. 나는 아직까지도 차가 시속 200km로 달리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3.

나는 살고 싶어서 공부를 했다.

태어나서 내가 하는 모든 행위들이 다 잘못으로 비춰지는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내가 공부를

그래, 그 빌어먹을 공부를 잘 한다면 조금 웃는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좋아하진 않으셔도 적어도 맞지는 않았다.

간혹 엄마아빠가 서로를 죽일듯이 온갖 가구들을 박살내며 싸워도 내가 공부를 하면 안싸우겠지 하며 그 난장판인 거실에서 울며

"싸우지 마세요 제가 공부를 할게요" 라며 문제집을 풀다가 사전에 입을 맞아서 입이 찢어졌다. 그들이 싸운 이유는 나와 전혀 무관했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었다.

언젠가 친구나 어른들에게 엄마한테 너무 맞아서 좀 있으면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가

사실 확인을 받은 모친이 집에 돌아와 정말 나를 죽이려던 때가 있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은 네 편이 아니야. 착각하나본데, 내가 이러는거, 너 밖에 몰라. 진짜 너 한번 내가 죽여볼까? 아무리 밖에서 입놀리고 다녀도 도와줄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한 번만 더 이런 상황 생기면 그땐 너랑 나 제삿날인거야. 내가 못할 것 같지? 자고있을 때 편하게 죽게 해줄게."


그 뒤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인데 수면장애에 시달렸다.

주변 식구들은 이런 내 상황을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라고 묻고 넘어갔다.

실제로 밖에서 모친은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매우 나를 자랑스러워하는데

나는 그런 모친의 모습을 보고 '우리 집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족들의 마지막 말.

"넌 똑똑하니까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거야."


단순히 '넌 똑똑하니까'라는 말에 꽂혔다는 이유로 나는 부모님이 날 죽이고 싶어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란걸 체득했다.

수학 공식마냥 외운거다. 주입식으로.

가슴에선 분노와 공포감과 죽고 싶은 마음이 엉켜있는데, 머리로는 "부모님이 날 사랑해서 그런거라니 정말 다행이다." 이런 양가적인 감정이 11살짜리가 감당해내고 있으니, 공포회피형이 안생길 수가 없었을거다.



4.

모친의 감정변화는 매우 변화무쌍했다.

어느날은 기분이 매우 좋아보여서 내게 예쁘다고 사랑한다고 말했다가

30분 뒤에 갑자기 화를 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집에 돌아오면 이유 없이 퉁명스럽고 날이 선 말들로 내게 성질을 부리곤 했다.

그럼에도 모친은 밖에선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쓴 것인지 현모양처가 따로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내 속은 썩어문드러져가고 있었다.


이런 기형적인 가정에서 자란 내가 정신이 똑바로 박힌 인간으로 자랐을리가 없다.

나는 자주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였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공감대 형성을 하지 못한채 매번 인생의 전반을 그래왔듯 겉돌며 살았고,

외로움은 외로움대로 해소를 하지 못해서 이상한 쪽으로 기울어졌다.


특히 대화에서부터 어긋나있었다.

보고 배운게 모친과 한 대화 밖에 없으니 그럴 수 밖에.


가령, 급식으로 나온 사과가 맛있었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상황이었다고 하자.

엄마: 오늘 급식은 어땠니?

나: 사과가 후식으로 나왔는데 맛있었어요.

엄마: 사과는 영양소가 좋은 과일이지. 예전에 @@이가 사과를 그렇게 좋아했거든? 근데 걔가 사과만 먹다가 이번에 결혼을 했어. 근데 남자를 잘못 만났어. 여자는 남자 잘못 만나면 인생 종치잖아.


혹은 내가 그 날 시계를 보는 법에 대해서 배웠다고 말을 하면

"살면서 시계를 보는 건 중요해. 근데 너 시간 계산을 하는 법은 아니? 그게 중요한건데. 하여튼 넌 매번 부족하다니까. 그나저나 난 시계 좋아해. 이번에 새로 나온 시계를 살까 고민중이야. 사진 한 번 볼래? 어때? 살까 말까? 근데 너 때문에 돈이 없다."


그러니까, 말꼬리를 잡는 내용이 많았고, 남의 얘기, 날 비난하는 내용, 본인 얘기만 하는 즐거움 그런 것 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그걸 보고 자란 내가 대화를 제대로 할 리가 없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예전에 친구와 주고받았던 문자 내용을 보면 내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마주하면서 자주 창피함을 느낀다.



5.

자존감 또한 높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예체능 쪽에 소질을 보이는 편이었다면, 공부만 해왔던 모친은 그런 내게 들으라는 식으로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 예체능을 하겠다고 난리야" 라던가

학교에서 친구와 갈등이 생겨 맞고 온 상황이 가정에 연락이 갔다면 모친은 "찌질하게 쳐맞고나 다니고 학교생활을 어떻게 쳐하고 다니는거야" 라며 모든 상황을 내 책임으로 몰았다.

학교 친구에게 편지를 써준 날 그 아이의 어머니가 내 모친에게 "얘는 글을 너무 잘 쓰는 것 같아~"라고 했을 때도 "얘가?" 라고 대답하거나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가 머리가 좋은 것 같다고 연락이 가면 말이 안된다며 기분 나빠했다.

친한 친구를 집에 데려오면 그 친구가 집에 돌아갔을 때, "급이 안맞네"라며 같이 놀지 말라거나,

친구를 사겼다고 하면 "걔는 널 친구로 생각 안할걸" 혹은 "누군데? 집에 데려와" 라고.


학교에선 간혹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해도 나는 그 뒤로 집에 내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 아닌데 내 잘못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나는 대부분의 상황을 묵인하고 혼자 품고 상해가곤 했다.

어쩌다가 소위 말하는 패드립이나 부모욕을 먹어도 기분이 나쁘기 보단 기뻐서 "헐 맞아."라고 격하게 긍정했다.

도움을 요청해오는 날 외면했던 사람들보다 친하지도 않은 패드립을 하는 아이가 반가웠다.

사고체계를 뒤틀어서 그렇게라도 내 편이 필요했다.

부모님이 나쁜 사람이었다는 말.

더 나아가서 '너는 그때 어렸고,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으며,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이 너무 듣고 싶었다.


어쨌거나 그런 병신같은 상황에서 조차도 내가 성적을 잘 받아오면 모친은 그렇게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했다. 공부만.

엄마가 뭐라고. 그딴 엄마에게 받는 사랑이 대체 뭐라고.




6.

성인이 된 나는 상당히 불건강한 모습이었다.

쉽게 말하면, '갇혀 지낸 사람'이라고 보면 편하다.

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대화가 자꾸 겉돌거나 내 얘기는 안듣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 있잖아. 그게 나였다.


그런데 애정표현을 잘못 배웠으니,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보면 묘한 폭력성이 돋아났다.

늘 마음속으로 외치곤 했다.

'사랑한다고. 내가 널 좋아한다고. 그래서 널 죽여버리고 싶어. 존나 짓뭉개버리고 싶어.'



반대의 상황에서도 이건 내가 창피해서 끝까지 숨기고 싶었는데, 내가 사랑받고 싶을 땐, 그 사람에게 구석에 몰려서 쳐맞는 느낌은 어떨까 늘 상상했다. 상대방이 내게 화내는 모습은 어떨까. 그런 생각.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도 사랑해줬으면 좋겠는데.

사랑한다는 말 말고 더 확실한게 뭐가 없을까 자주 고민했다.


이런 상황은 내가 자취를 하게 되면서 해결이 되었다.

자취를 하면서 나는 정말 많이 변하게 되었다. 긍정적인 쪽으로.

나는 정말 갇혀지냈구나 몸소 체감했다.

세상은 정말 넓고 다양했다.

그러니까, 내가 공부에 집착을 했던게 그렇게 심각할 문제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7.

모친을 포함한 외갓집 전체가 멍청한 나를 싫어하니, 내가 멍청한 면을 보이면 타인들도 나를 기피할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은 관대했다. 대학을 보고 어느정도 대화는 주고받아도 그게 그 사람의 전부가 되지는 않았다.

또, 모친이 말하는 모든 것들이 다 정답이거나 사실이 아니었고, 일부러 내게 거짓말을 한 것도 깨닫게 되었다.

가령, 모텔은 원조교제를 하는 곳이라고 한 것, 남자들이 따라주는 술엔 약이 타있다고 한 것 이런거.

모친은 그런 말을 내게 해주며 본인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렇게 친절한 엄마가 어딨냐며. 부모복이 타고났다고.




8.

내가 점차 나이를 먹어갈수록 모친과 부친이 내게 폭력을 가하는 일은 없어졌다.

칼을 휘둘러도 정작 내가 피하지 않으면 무슨 이유에선지 찌르지를 못했고,

오히려 내가 정말 죽고 싶어서 셋이 다 같이 동반자살하자고 진지하게 달려들면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일종의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 대상이 하필 실수로 태어나버린 만만하고 미운 나였을 것이다.

나 때문에 부모님은 이혼도 못하고 돈은 돈대로 들고 얼마나 미웠을까.

나는 그들을 때론 이해한다. 그래서 가끔 말한다.

당신들이 한 실수는 나를 제때 낙태하지 않은 것이라고.

 

9.

결국 한동안 성에 미쳤었다.

섹스를 하는게 좋았던 건 아니고,

사람과 접촉이 필요했어서.

조금만 다정하게 대해주면 나는 내일도 살고 싶어하는 인간이니까.

안기고 싶어서. 그냥 누가 날 좀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사탕 하나 주면 쫄래쫄래 따라가서 간과 쓸개를 내어줄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매우 위험하고 상대방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겠지만 내 입장에선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서 기어야했다.

상대방의 눈치를 읽어내고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

내 모국어는 누구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니까.

"사랑해줘"라고 말해도 당신들이 못알아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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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상대쪽에서 날 좋아해주거나

내가 상대를 좋아하게 되면 폭력성이 올라왔다.

나는 이 빌어먹을 대물림이 너무 싫다.

부모님을 빼다박은 나.


짝사랑을 하게 되면 나는 미운짓만 골라서 하고,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곤 했다.

내가 이따위짓을 해도 날 사랑해줬으면 좋겠고,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폭력을 휘두르는 건 널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표현이라고.

결핍이 있는 사람이니 날 보듬어줬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그들은 딸을 원하는게 아니다. 여자친구를 원하는거지 이런 만들다가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 같은 나를 원하는게 아니라고.

나는 독립적이고 센 척을 매우 잘하지만 사실 버려지는 것이 너무도 무서운 사람이다. 치부 같아서 아무한테도 말 안했는데.

이거, 당신과 나만 아는 비밀.


이젠 머리로는 안다.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그런데

그런데

태어나서 한평생을 이런 사고로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나는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타인과 너무 다른 내가.

아니, 틀린 내가.

나는 틀린 사람이었다.

너무 오래된 습관은 고치지 못한다.

나는 아직까지도 공황장애가 오거나 죽고 싶다거나 힘을 상실하면 옷장부터 들어간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죽어가는 목소리로 털어놓듯 말하고 싶다.

나 지금 외로워. 죽어버릴 것 같아요.

그냥, 그냥 나 좀 사랑해줘요.



10.

내가 공포 회피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별 생각이 없었으나, 남자 문제로 트러블이 생기고 마음이 몇 번 다친 이후로 문제가 내게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 글을 씀으로써 내가 얻고 싶은 것은 그저 심리적 평안이다.

그냥 외로워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고, 내 가슴은 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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