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담 Jul 23. 2023

네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랑

오늘은 우리 아가가 364일을 기다린 생일이네! 생일 축하해! 엄마는 우리 아가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단다


어떤 라디오 청취자가 어떤 사랑스러운 아가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어떤 청취자와 그녀의 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지며 364일 동안 이 날만을 기다려온 아가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아마 청취자도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면서 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고 나는 그 의도를 알면서도 행복하게 걸려들었다. 아이들의 일 년은 용돈을 받는 새해, 바다를 놀러 가는 여름방학, 송편을 먹는 추석, 선물을 받는 크리스마스, 그리고 케이크를 먹는 생일로, 기다림과 설렘으로, 사랑으로 채워지니까. 사연의 주인공인 꼬마 아가씨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는지 모를 것이다. 꼬마 아가씨가 364일 동안 기다려온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년시절에 잠깐 다녀오고 미소 짓고 기지개를 켰을지 모를 것이다. 몰라도 된다. 우리의 작은 생일자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임무를 다한 것일 테니.


보통 아침에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라디오 방송은 휘발성이 강하다. 나는 한 번도 라디오에 사연이나 퀴즈 정답을 보내본 적이 없다. 꾸준히 듣는 청취자이지만 열렬히 참여하는 애청자는 아닌 것이다. 애청자들은 라디오를 듣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많은 사랑과 응원을 보낸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응원을 아침 깜짝 선물로 받았을 누군가가 부럽기도 하지만 종종 '혹시나 사연의 주인공이 모종의 이유로 이 순간만 응원을 못 들었으면 어쩌지?'라는 걱정도 잠깐 스친다. 곧 일상생활에서 나와는 상관없는 걱정들은 집을 나서면서 사라진다. 같이 들었던 음악과 함께 말이다. 작은 생일자를 향한 축하인사도 그럴 줄 알았다. 


미국 대사관을 나오니 습기를 가득 머금은 더운 공기가 콧구멍을 막았다. 숨을 쉬고 있지만 쉬지 않는 것 같은 날이었다. 바삐 지하철을 타러 가는 중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교보문고를 가는 여자아이를 보게 되었다.


'얼굴 모를 작은 생일자는 라디오를 들었을까?' 


들었기를, 잠깐이지만 마음을 담아 바랐다. 365일 중 무려 364일을 기다렸던 하루인 만큼 미소 짓게 하는 모든 일을 놓치지 않길 바랐다. 참 주책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가족과 친구가 아닌 제삼자의 행복을 바라는 내 모습이 매우 생경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오랜 기간 내 사람의 범위를 좁혀온 것일까? 그동안 타인의 경계를 매정하게 구분해 온 것은 아닐까?


성폭행 피해자가 온/오프라인 상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책은 아마도 "여자인 네가 더 조심했어야지"일 것이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그러길래 누가 바보같이 모르는 사람을 믿냐, 따라가냐 등등. 순화해서 표현하지만 결국 이런 말들이었다. 그 당시 나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으려고 했다. 타인이 보내는 호의를 믿지 않으면 매정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그런 호의를 믿었다가 내가 다치면 내가 어리석어서 그랬다는 비난을 받으니, 그렇다면 내 안전을 선택하는 쪽이 더 낫지 않겠냐고. 호의란 내 사람이 주는 것만, 그리고 내 사람이 주는 것만 삶에 유익하다고 믿으면서. 


이런 다짐은 내가 회복하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람이 쓸 수 있는 정신적인 에너지는 한계가 있다. 내가 마더 테레사가 아닌 이상,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무한히 친절하고 진심을 담아 따뜻한 응원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나 자신이 몸도 마음도 불안정한 상황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살피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행히 혹은 불행히 어떤 상황에서도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선택을 해야 했다. 마음이 베풀 수 있는 제한된 여유를 어디에 쏟을 것인지 말이다. 내 사람에게만은 애정을 잊지 말자. 덕분에 내 재활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사람으로서 살아갈,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일상에서 궤도를 되찾은 뒤에도 나는 인간관계의 방역에 철저했다. 안전한 사람과 안전하지 않은 사람, 사랑할 사람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을 계속 분류해 나갔다. 성폭행과 이후 트라우마가 스쳐 지나간 후에도 방역과 격리는 지속되었다. 버스 옆자리에 어르신이 앉아도 에어팟을 끄지 않는다. 어르신이 물으시는 질문에 대답하고 다시 서둘러 에어팟으로 귀를 막는다. 택시 아저씨가 물어보는 사적 질문에 고민하고 대답하지 않는다. 대충 그럴듯한 대답을 던지고 창밖을 바라본다. 소란스러운 거리는 무조건 피한다. 슬픈 사연은 사실관계만 읽고 넘겨버린다. 어디에도 휘말리고 싶지 않다. 내 마음에서 타인에 대한 호의를 빼면 이기적이지만 더 편하게 살 수 있다. 


작은 생일자를 향해 닿지 않을지도 모르는 축하를 보내며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나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누군가 "왜 당신은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물으면 묻는 이가 자신의 질문을 후회하게 될 정도로 길게 대답할 수 있다. 기억하고 있는 사랑의 순간들이 이렇게 많다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의 순간들도 그만큼 있지 않을까? 타인 그 자체였던 나에게 조건 없는 배려를 해주었던 사람들은 또 어떤가?


네가 울고 있든지 절망하고 있든지 그런 건 관계없어. 네가 어딘가에 있고 심장이 뛰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모두 잘 있다고 안심하게 돼. 잘 지내십니까? 살아 있습니까?


 터키에서 생판 모르는 한국인 여자애를 구해주었던 독일인 아주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너의 이름이 남아 있을 거고 우리는 너를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을 거야." 생판 남인 사람이 생판 남인 사람에게 보낸 사랑이었다. 결국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랑으로 오늘을 버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무턱대고 믿어 호의를 베푸는 일은 위험하다. 그렇지만 무턱대로 타인을 외면하고 나의 삶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임을 상기한다. 아무리 모르는 척하려고 해도 내가 타인에게 받은 사랑이 마음 어딘가에 자리 잡아 오늘의 나를 지탱하고 있으니 말이다. 


작은 생일자가 행복한 생일을 지나, 다시 다가올 생일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길. 마음 한구석에 타인을 향한 따뜻한 자리를 마련하며 기도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전한 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