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e Step Above

3. 프리미엄 항공, 시장 재편과 미래

'프리미엄의 경로를 바꾸는 항공사들' 시리즈 PART 3

by 봉마담


팬데믹 이후 항공사들은 같은 하늘을 날면서도 다른 길을 택했다. 일부는 First Class를 버렸고, 일부는 오히려 강화하는 상반된 전략을 취한 것이다. 서로 다른 길 같지만, 본질은 같다. 달라진 수요에 맞춰 프리미엄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이다.


그 배경은 분명하다. 출장 축소와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는 프리미엄 이코노미 확대로 이어졌다. 반대로 고소득층의 보복소비와 럭셔리 여행 수요 증가는 초고가 퍼스트 강화를 자극했다. 두 흐름이 동시에 커지면서, 항공사들은 자사의 노선 구조와 고객 포트폴리오에 맞춰 전략적 선택을 내리고 있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First Class 의 존폐가 아니다. 항공사들이 어떤 고객을 붙잡고, 어떤 방식으로 하이엔드 모델을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단순한 좌석배치 전략이 아니라, 항공 럭셔리 시장의 게임판이 새로 짜이는 과정이다.



케세이퍼시픽 프리미엄 이코노미 - 여유있는 리클라인과 레그레스트로 업그레이드된 편안함



퍼스트를 줄인 항공사들 - 프리미엄 이코노미로 이동하다


First Class 를 과감히 축소하거나 폐지한 기업들은, 좌석의 상징성보다 기재 전체의 효율과 수익성을 우선한다. 이 흐름의 대표 사례는 미국의 3대 항공사다. 델타와 유나이티드는 이미 수년 전 국제선 퍼스트를 철수했고, 아메리칸항공마저 전면 폐지를 진행했다. 대신 신형 비즈니스석과 Premium Economy 확대를 내세우며, 장거리 국제선의 상위 구조를 비즈니스와 Premium Economy 의 양축으로 재편했다. 이로써 미주 주요 노선에서는 영국항공 등 일부 외항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First Class 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아시아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대한항공은 2025년부터 보잉 777-300ER 여객기 11대를 개조해 First Class 를 없애고, Premium Economy를 새로 도입한다. 팬데믹 이후 수요가 정체된 일등석 대신, 합리적 업그레이드를 원하는 고객층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개조 후 해당 기재들은 비즈니스–프리미엄 이코노미–이코노미의 3클래스 체제로 운항되며, 대한항공은 이를 ‘일반석 고급화’ 전략이라 정의했다. 좌석을 줄이기보다 더 많은 승객에게 설득력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다.


중동의 카타르항공도 같은 방향을 택했다. 2023년 전 CEO 알 바커는 차세대 항공기에 First Class 를 넣지 않겠다고 밝히며 “비즈니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실제로 카타르의 간판인 Qsuite는 이미 퍼스트급 경험을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First Class 는 일부 A380 노선에서만 제한적으로 유지될 예정이다.


이 전략들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결론은 분명하다. Premium Economy는 더 이상 “중간 좌석”이 아니다. 이코노미 승객에게는 합리적 업그레이드로, 비즈니스 승객에게는 다운그레이드 옵션으로 기능하며 양쪽에서 수요를 흡수하는 새로운 캐시카우가 되었다. 이 전략을 택한 항공사들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고객을 포용하면서도 수익 구조를 안정적으로 다지게 되었다.



에미레이트 퍼스트 - 베드 메이킹 서비스와 잠옷, 기내 샤워까지 갖추고 있다



퍼스트를 지킨 항공사들 - 희소성과 상징을 강화하다


First Class 를 강화하는 항공사들도 있다. 규모는 줄었지만, 희소성과 상징성을 극대화하며 자사 브랜드의 정점을 지켜내는 방식이다.


중동의 에미레이트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전 세계가 일등석 축소 흐름을 따를 때, 에미레이트는 오히려 모든 A380과 B777에 일등석을 유지했다. 세계 최초의 기내 샤워, 전용 미니바, 독립형 스위트는 단순한 좌석이 아니라 하나의 특별한 경험으로 팔린다. 두바이라는 허브가 가진 환승 수요와 오일머니 자본이 그 뒷받침이 되어, 초호화 서비스를 기꺼이 지불할 고객층을 안정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에티하드는 2023년 A380을 다시 띄우며 First Class ‘아파트먼트’를 부활시켰다. 팬데믹으로 사라졌던 초호화 좌석이, 럭셔리 여행 수요의 회복세와 함께 돌아온 셈이다. 이는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최상위 서비스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신호에 가깝다.


루프트한자는 또 다른 길을 택했다. 좌석 수는 줄였지만, 2023년 새로운 ‘알레그리스 퍼스트 스위트’를 공개하며 투자를 이어갔다. “럭셔리 트렌드는 여행에서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CEO의 말처럼, 루프트한자는 특정 노선과 기종에 한정된 초호화 일등석으로 프라이빗 제트와 경쟁할 초부유층을 겨냥한다.


에어프랑스는 퍼스트를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일부로 삼았다. 2025년 새로 공개한 ‘라 프리미에르’ 스위트는 평균 편도 1만 유로에 달하지만, 이미 흑자를 내는 사업 부문이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의 이미지를 항공 서비스에 투영해, 경쟁사의 최상위 고객까지 끌어오려는 전략이다.


영국항공, 싱가포르항공, 일본항공도 같은 궤적에 서 있다. 모든 노선에 일등석을 두는 대신, 프리미엄 수요가 확실한 구간에만 제한적으로 운영하며 브랜드의 상징을 이어간다. 싱가포르는 세계 최장거리 노선에 소수의 스위트를 얹었고, 일본항공은 A350-1000 신기재에 일등석 시트를 새로 탑재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극소 좌석, 한정된 노선, 초고가 요금을 통해 브랜드의 아이콘이자 초부유층을 겨냥한 무기로 선택했다. 규모는 줄었지만, 그 존재감은 한층 더 뚜렷해졌다.



걸프스트림 G650ER 전용기



프라이빗 제트로 확장한 항공사들 – 여정 전체를 장악하다


First Class 의 경쟁은 이제 기내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부 FSC (Full Service Carrier) 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라이빗 제트 시장에 뛰어들며 초고객층을 붙잡고 있다. 상용편과 전용기를 연결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끊김 없는 여정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흐름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아메리칸항공은 1990년대에 이미 전용기 지분 판매 사업(Flexjet)을 시도했고, 델타는 2000년대 초 ‘델타 프라이빗 제트’를 운영하며 상용기 고객에게 전용기 이용 시 마일리지를 적립해주는 파격적 제도를 내놨다. 유럽에서는 루프트한자가 2005년 Lufthansa Private Jet을 출시해 장거리 일등석 고객을 유럽 소도시까지 바로 연결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시아에서도 대한항공이 2007년 ‘Korean Air Business Jet’을 세워 대형 전용기까지 보유하며 VIP 시장에 선도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2009년, 카타르항공이 Qatar Executive를 설립하면서 중동 메가캐리어 특유의 자본과 수요를 앞세워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성과는 항공사마다 갈렸다. 루프트한자는 15년 넘게 운영하던 전용기 사업을 2022년에 조용히 접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델타 역시 2010년대까지는 미국 내 시장 점유율 4위까지 올랐으나, 결국 Wheels Up에 매각하며 파트너십 형태로만 남았다. 반면 카타르항공은 정반대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Gulfstream G650ER 15대, G700 추가 도입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초장거리 제트 함대를 갖췄고, 코로나 이후 폭증한 수요에 맞춰 제트카드 프로그램과 Avios 마일리지 적립을 전용기 고객에게까지 확장했다. 런던, 뉴욕, 몰디브 같은 인기 노선에서는 상용기 퍼스트와 전용기를 아우르는 원스톱 럭셔리 여행을 사실상 상품화한 셈이다.


대한항공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보유 기체는 4대에 불과하지만, 연간 멤버십을 통해 ‘30시간 비행권’을 판매하고, 삼성·현대차·YG 같은 재계와 연예계 VIP를 고객으로 확보하며 국내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자사 전용기를 직접 보유하는 대신 대한항공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 총수들이 늘어난 것은, 이 사업이 단순한 부업이 아님을 보여준다.


결국 프라이빗 제트에 뛰어든 기업들이 공통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같다. First Class 만으로는 더 이상 초고객층을 완전히 묶어둘 수 없다. 이제는 개인화된 이동, 도어 투 도어의 연결, 마일리지 프로그램까지 아우르는 통합 서비스가 새로운 무기다. 프라이빗 제트는 이동이 아니라, 완결된 경험이다. 항공사가 여정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다.



팬데믹 기간, 가족 단위 Private Jet 수요가 폭발하며, 프리미엄 항공의 판도가 달라졌다



프리미엄 항공, 향후 3년의 시나리오


앞으로 3년, 프리미엄 항공시장은 네 갈래 흐름으로 갈라질 것이다.


첫째, 3클래스 체제의 고착. 장거리 노선의 표준은 비즈니스–프리미엄 이코노미–이코노미 3클래스 체제로 굳어질 것이다. Premium Economy는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핵심 수익원이다. 신규 기재와 리트로핏 모두 이 구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특히 미주와 유럽 노선에서 비중은 더 커질 것이다.


둘째, First Class 의 니치화. 퍼스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전면적 운영이 아닌, 소수 좌석·선별 노선·초고가 요금으로 살아남는다. 루프트한자의 알레그리스 스위트, 에어프랑스의 라 프리미에르, 싱가포르항공의 스위트처럼 ‘희소성을 무기로 한 초럭셔리 상품’으로 진화, 브랜드 정체성과 VVIP 고객 유지를 위한 아이콘 역할을 한다.


셋째, 지상 경험의 프라이빗화. 경쟁의 무대는 기내에서 공항으로 확장된다. 에미레이트의 전용 체크인 라운지처럼, 허브를 보유한 대형 항공사들은 보안검색과 환승까지 끊김 없는 프리미엄 동선을 구축하려 할 것이다. ‘좌석 경쟁’에서 ‘여정 경쟁’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는 셈이다.


넷째, 프라이빗 제트 인접 서비스의 양극화. 일부는 카타르처럼 전용기를 그룹 전략으로 키우고, 일부는 루프트한자처럼 과감히 철수한다. 자본력과 허브 수요, 국부펀드 지원 등 구조적 조건이 향방을 가를 것이다.


네 가지 흐름이 모아주는 결론은 단순하다. 볼륨은 프리미엄 이코노미가, 상징은 퍼스트가, 차별은 지상이 맡는다. 그리고 초고객층을 붙잡으려는기업들은 결국 프라이빗 제트까지 연결하며, 여정 전체를 통제하려 할 것이다.






마무리하며


이 시리즈는 First Class 가 좌석이 아니라 여정의 시작점에서 다시 정의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이어서 프리미엄의 무게중심이 Premium Economy로 옮겨가는 흐름, 퍼스트를 지켜내는 항공사들의 선택, 그리고 프라이빗 제트로 확장되는 새로운 경쟁 무대까지 살펴보았다.


오늘의 하이엔드 시장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구조적 재편의 단계에 들어섰다. Premium Economy는 기업의 안정적 수익원으로 자리잡았고, First Class 는 소수 노선과 극소 좌석으로 한정되면서도 브랜드의 상징적 정점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지상 경험의 프라이빗화, 프라이빗 제트 인접 서비스가 더해지며, 프리미엄은 이제 좌석을 넘어 여정 전체를 설계하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각 항공사가 어떤 조합으로 프리미엄을 설계하고, 어떻게 그 방정식을 시장에 맞게 재구성하느냐가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럭셔리 항공의 미래는 좌석의 우열이 아니라, 프리미엄을 배합하는 방식의 정교함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정교함이 앞으로 10년, 하늘 위의 여행을 다시 정의하게 될 것이다.






<프리미엄의 경로를 바꾸는 항공사들> 시리즈

Part 1. 퍼스트 클래스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Part 2. 프리미엄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 프리미엄 이코노미 클래스의 전략적 부상

Part 3. 프리미엄 항공, 시장 재편과 미래 (본문)





'One Step Above'는

호스피탈리티 산업의 브랜드 전략과 철학을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인사이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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