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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는 이틀에 한 번만 해라

석회수와의 평화협정

by 마담 히유

프랑스에 처음 와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현실 중 하나.
바로 샤워와의 관계 재정립이다.


한국에서 살 때는 하루 한 번, 혹은 두 번 샤워가 기본이었다.
여름엔 땀이 나고 찝찝해서 자주 씻어야만 살 것 같았고, 머리도 매일 감지 않으면 떡진 느낌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프랑스 사람들은 매일 씻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안 씻어도 되면 안 씻는다.

처음엔 놀랍고 약간은 충격적이겠지만,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자.

향수가 왜 프랑스에서 발달했을까?



... 이건 농담이다.


향수는 온수 샤워는 상상도 못 하던, 정기적으로 씻는 문화 자체가 없던 중세 유럽에서 그 현실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씻지 못하는 현실을 장미와 머스크, 라벤더 향으로 덮던 시대였던 셈이다.


물론 지금은 프랑스 전역에서 온수가 콸콸 나오니 이걸 핑계라고 댈 수는 없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며칠만 살아보면 프랑스인들이 매일 씻지 않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짐작하듯, ‘석회수(l’eau calcaire)’ 때문이다.

샤워를 하고 나와도 몸이 미끈거리지 않고,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건조해지고, 심지어 샴푸를 아무리 뿌려도 거품이 잘 나지도 않는 데다가 린스를 아무리 발라도 뭔가 ‘씻긴 느낌’이 안 든다.


게다가, 이 물은 씻는 사람뿐 아니라 욕실 기기들까지 공격한다.
샤워기 구멍이 막히고, 수도꼭지에는 하얀 석회 자국이 끼고, 보일러는 말도 없이 고장 난다.
(프랑스에서 보일러 수리 기사가 돈 잘 버는덴 이유가 있다)


그러니 현지인들은 자연스럽게 결론을 내린다.
“굳이 자주 샤워할 필요는 없다.”


이게 프랑스식 물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이다.





사실 프랑스물이 꽤 들은 나지만, 이 부분만큼은 아직도 타협이 잘 안 된다.

나는 아직도 저녁에 꼭 샤워를 해야 한다. 청결을 위해서라기 보단 (물론 더러운 몸으로 내 침대 속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한다. 잠깐이라도 나갔다 왔으면 얄짤 없다.) 샤워가 내 정신을 맑게 해주는 의식 같은 거랄까? 온몸을 물에 적시고 나면 비로소 하루가 마무리되는 느낌. 깨끗한 몸으로 침대 속에 들어가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진다.


다행히 내 피부는 예민한 편이 아니라 큰 문제는 없었다. (백인들의 피부가 얇고 약하다는 건 꽤 알려진 이야기다. 아마 그래서 프랑스에서 이틀에 한 번 샤워하라는 권고가 나온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머릿결이 푸석해지긴 했지만, 그런 머릿결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무던한 (혹은 둔한) 성격이 큰 몫을 했다.

남편도 나와 비슷한 덕에 우리는 자연스레 아이들도 매일 씻겼다.


그리고 우리는 소아과 의사들의 잔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아이는 이틀에 한 번만 씻기세요."

아이가 큰일을 보면 엉덩이를 꼭 물로 씻긴다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보면 경악할 소리일 듯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석회수 때문에 아이를 매일 씻기지 말라고들 한다. 대신 클렌징 워터를 적신 솜으로 엉덩이를 챱챱 닦아주는 편이다.


아이 피부는 약하고, 석회수가 강하니 매일 씻기면 오히려 피부 트러블이 생긴다는 게 의사들의 공통된 설명이었다. 실제로 내 첫째 아이는 신생아시절 피부 트러블로 꽤 고생했다.


그때서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됐다.


아. 진짜구나.



그러니 이제 샤워가 귀찮게 느껴질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여 보자.

오늘은 프렌치 스타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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