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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과 공생하라

파업과 시위는 프랑스 삶의 일부이다

by 마담 히유

프랑스에 살다 보면 일기예보만큼이나 자주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생긴다.

바로 파업 및 시위 일정.


"오늘 날씨는 흐림, 기온은 12도, 그리고 교통 상황은… 파업 중."


출근길 지하철이 멈춰 있고, 버스는 사라졌고, 심지어 비행기까지 결항하는 것은 다반사.

그뿐만이 아니다. 대중교통은 기본이고, 농부, 의사, 선생님, 학생 등등 카테고리를 가리지 않는 것이 이곳의 파업 / 시위이다.

65bbab95ae72ebf20b290a20_Article blog LYSEO (3).png 농민들이 시위하는 법, 트랙터로 고속도로를 점거하기



내가 처음 겪은 시위는 학교에 다닐 때, 학생들이 벌이던 시위였다.


그 시위는 노동법 개정안(“Loi Travail”, 일명 El Khomri 법안) 때문이었다. 이 법안은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주당 35시간의 노동시간 상한을 넘는 근무를 더 쉽게 허용하며, 기업이 노사 계약을 기업이 (유리한 쪽으로)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에 반대하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 노동조합이 연대해 파업, 거리 시위, 학교 점거 등이 이어졌고, 우리 학교도 그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날도 역시 학생들이 캠퍼스 입구에 진을 치고 있었고, 나는 쪽지시험을 보러 가기 위해 평소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시험 시간이 촉박했기에 "아 제발 오늘만은 조용히 지나가자"는 마음으로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도 학생이야?"

"응, 나도 이 학교 학생이야."

"그럼 너도 시위 참여해."


그의 말은, 지금은 학생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하니 나도 동참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겪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머릿속엔 오직 시험 걱정뿐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과 사무실로부터 긴급 연락이 왔다.
오늘 시험은 시위로 인해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연대하지 않은 소시민이 되어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시위 및 파업들에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또 시작했네." "이 노선은 아예 안 다녀. 다른 데로 돌아가." "이번엔 교사들 이래." "다음 주는 쓰레기 수거 파업이래."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파업은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라는 걸.


처음 겪으면 매우 당황스럽다. 두 번 겪으면 짜증이 난다. 하지만 이것도 여러 번 겪으면 체념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파업 대비 루틴을 짜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지하철 어플을 매일 확인하고, ‘trafic perturbé’(교통 혼잡)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고, 급한 약속엔 버스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걸 미리 계산하게 된다. 파업은 멈춤이 아니라, 흐름을 바꾸는 신호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사실 프랑스에서 파업은 단순한 항의가 아니다. 이들은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것일 뿐이다.

요구가 있을 땐, 멈춘다.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일상을 멈춰 존재감을 드러낸다.


환경 미화원들은 그들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길가의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농민들은 대형마트의 갑질에 반발하며 모든 납품을 멈추고 트랙터로 고속도로를 점거했다.

철도 공무원들은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지하철 운행 수를 대폭 줄인다.

교사들은 교육 예산 삭감에 항의하기 위해서 수업을 통째로 취소하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의사들은 프랑스의 의료 시스템 개선을 위해서 이미 완료된 예약을 후로 미루고 하루 종일 시위에 참여했다. (내 둘째 아이의 4개월 백신 예약이 이렇게 일주일 미뤄졌다. 매우 흔한 일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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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미화원들의 시위. 이런 상황이 일주일 넘게 지속되었다.

나의 남편은 프랑스인이다.

매우 '정상적인 프랑스인'처럼, 그도 학생 때는 이런저런 시위에 참여하곤 했다고 한다. "시민의 권리"니 "연대 정신"이니 하며, 시위가 하나의 문화인 곳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는, 시위는 하나의 의무이자 일종의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의 촛불시위 영상을 보고는 나에게 물었다.


"저 촛불 던지는 거야?"

".... 아니, 그냥 들고 있는 거야."

" 화염병 없어?"


반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이날 다시 느꼈다. 프랑스와 한국의 시위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자주 잊고 살지만, 프랑스는 누가 뭐래도 왕의 목을 자른 나라다. 프랑스의 시위는 격렬하고, 뜨겁고, 정말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돌을 던지는 '혁명 후손들'의 퍼포먼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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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살아남는 기술 중 하나는 이거다.

파업이나 시위 때문에 예정된 일정이 엉킬까 봐 조마조마하거나 괜히 화내는 대신, 그냥 조금 더 일찍 출발하고, 필요하면 걷고, 필요하면 멈춰서 커피 한 잔 마시면 된다.


파업과 시위는 불편이 아니라, 프랑스인들의 호흡이다.
파업과 시위는 프랑스 삶의 일부이다

파업과 시위는 프랑스 삶의 일부이다


지금도 아침마다 나는 생각한다.
"오늘은 파업이 없기를."
그리고 앱을 켜서 확인했을 때, "정상 운행 trafic normal"이라는 단어를 보면 가슴이 뛴다.

이 나라에서 정상 운행이 주는 감동은, 항상 기대하진 않지만 가끔 찾아오는 뜻밖의 선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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