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왕의 목을 단두대로 자른 프랑스다
프랑스 생활 초반, 내가 가장 당황했던 순간 중 하나는 상점에서 직원이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때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인사를 해주는 건 나고,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도 직원은 느릿느릿 자기 일을 계속하고,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업무를 다 마친 후, 나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나는 대기선에서 기다려야 했다. 급한 일이어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 안절부절못하면서 기다릴 뿐이었다. 심지어 계산 중인데도 옆 직원과 수다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저 앞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릴 뿐.
처음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지금 나 기다리는 거 안 보이나...? 계산은 안 하고 왜 잡담을 해?"
"고객은 왕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이 말은 서비스의 상식 같은 것이었다.
매장에 들어서면 환한 미소로 인사를 받고, 고객이 조금이라도 불편을 느끼면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곳. 정말 불친절한 직원이 있다면, 소위 "윗사람 나오라 그래!"를 시전 하면 다들 안절부절못하는 그곳.
하지만 프랑스에서 고객은 왕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내가 파는 사람이니까 내가 왕이다"라는 분위기가 더 강했다.
"나는 내가 정한 방식대로 서비스할 거고, 당신도 거기에 맞춰주길 바란다." 이게 그들의 기본 태도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불친절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건 무례함이 아니라, 역할에 대한 선명한 경계였다. 그 사람의 역할은 '친절함'이 아니라 '판매'인 것이다.
물론 친절하면 좋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플러스알파’, 보너스일 뿐.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을 프랑스에서도 적용하고 싶으신 분들이 혹시라도 있다면,
나는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프랑스는 왕의 목을 자른 나라라는 걸.
프랑스에선 '서비스'란 상호 존중의 문제다. 상대가 아무리 고객이어도 말투나 태도가 무례하면 고객 취급을 해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에서는 '감정노동자'라는 개념도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불쾌하면 그냥 표정으로, 말로, 행동으로 불쾌함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억지로 웃지 않는다. 억지로 참지도 않는다. 그게 여기 사람들에겐 당연한 것이다.
물론 고급 식당이나 호텔 등에서는 고객의 만족을 위해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고객을 대하겠지만, 그렇다고 고객이 "왕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 '갑'이 아니고, 직원이 '을'도 아니며, 그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평등한 사람들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