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에서 토론은 필수다

말로 싸우는 게 아니라, 말로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

by 마담 히유

프랑스에 살면서 내 인생에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이제는 더 이상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는 교환학생 자격으로 프랑스에 온 뒤, 결국 프랑스 학교로 편입하게 되었다.
유학 초반 언어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실제로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녀보니 더 큰 문제는 언어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내 '의견'을 묻는다는 것.

그들은 정답을 묻는 것이 아닌, 내 생각을 묻곤 했다.


그리고 간신히 생각을 짜내어 대답을 하더라도, 곧바로 다른 학생들의 반박이나 전혀 다른 시선이 쏟아지곤 했다. 심지어 시험조차도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서술형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 된 나에게 있어서 이는 크나큰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내 생각을 억지로 끌어내야 했고, 말하는 내내 불안했다.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불안은 프랑스 학생들에겐 별로 없어 보였다.
그들은 틀리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을 훨씬 더 두려워했다.
조금 엉성해도, 논리가 부족해도, 일단 자신의 생각을 던져보고, 거기서 대화를 시작했다




이는 프랑스 교육의 일환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의사표현이나 생각을 말하는 수업을 진행한다.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해?"

"그건 어떤 근거에서 말하는 거야?"

이런 질문은 그들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생각할 기회'를 주는 방식이었다.

단지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 자기 생각을 '설득력 있게' 말할 줄 아는 아이가 훨씬 더 존중받는다.

말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생각을 잘 정리해 표현할 줄 아는 아이.
그게 프랑스 교육의 핵심 중 하나다.


그 때문일까, 프랑스 사람들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정말 놀라울 정도로 토론거리를 찾는다.

정치, 사회, 교육, 환경, 심지어 요리 재료 하나까지도.


그저 호기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생각을 꺼내놓고, 부딪히고, 때로는 물러서는 과정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문화다.

하지만 단순한 대화가 어느새 갑자기 열띤 논쟁으로 번지는 게 당연한 풍경이었고, 다툰 줄 알았던 사람들이 몇 분 뒤에 웃으면서 와인을 마시고 있는 걸 보며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도 조금씩 깨닫게 됐다.

토론은 의견을 이기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것.

오히려 이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를 동등한 위치로 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말해봤자 안 통할 사람, 소통의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여길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소통의 가능성이 사라질 때, 그저 침묵만이 남는다.




프랑스에서 13년째 살아가면서, 나 또한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한국에만 가면 부모님과 자주 부딪히곤 한다.


나는 그저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부모님 귀에는 그게 '말대꾸'로 들리는 매직.

진심 어린 대화의 시작이, 불경스럽고 버릇없는 태도로 오해되기 일쑤다.


프랑스에서 자라면서 (나는 미성년자에만 자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20대에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게 많다고 보기에, 감히 자랐다는 표현을 썼다.) 몸에 밴 사고방식이, 고작 어른 앞에서 한마디 꺼냈다는 이유로
"예의 없음"으로 재단되는 현실이 씁쓸했다.


이런 나의 상황을 보며, 나는 '어떻게 말할까'보다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지금, 나는 그저 밥 잘 먹이고, 감기 안 걸리게 돌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생각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그리고 그 생각을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고개를 갸우뚱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프랑스의 생활이나 교육방식이 다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참고로 나는 프랑스 욕을 하라면 3박 4일 내내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토론 문화 하나만큼은, 내가 프랑스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존중하고, 가장 사랑하는 문화다.


실제로 나는 단순한 이야기보다는 그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아기 1명과 염소 100마리 중 어떤 목숨이 더 중요하냐" 같은 트롤리 딜레마에 관련된 토론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실제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며 나 온주제이다.)

그저 철없는 잡담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가치관과 세계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된다.





토론은 단지 교육의 방식만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거리와 신뢰를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다.

의견이 다르다고 무조건 틀린 건 아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느끼는 것, 그건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꺼내놓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같은 생각을 해야만 가까운 사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때로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고, 서툴더라도 질문을 던지고, 나와 다른 의견 앞에서 도망치지 말자.

인생에서 토론은 필수가 맞다.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생각이 어떤 모양인지 들여다보기 위해서.


그리고 결국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그 마음 하나로, 우리는 말하고 듣는 것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9화손님이라고 왕처럼 굴지 마라